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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Dec 31. 2015

내가 지은 나의 이름

가랑비메이커 첫 단상집  #4 이름의 값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당신에게 내 페이지가 닿기까지]

#story 4  

<내게 지은 나의 이름>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단상집 작업과정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이름,이라는 것

[삶에 있어 가장 많이 마주하는 몇 글자, 언제 보아도 낯설게 다가오는 내가 시작하지 않은 나의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일이 묻고 다니질 않아,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유독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이제와 확실하게 이렇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린 시절, 내 이름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름 두 글자, 어린 시절


쌍둥이로 태어나, 같은 부모님과 같은 집 그리고 비슷한  외모뿐만 아니라 언니와 내가 나눠가진 것은 같은 성을 따라, 비슷하게 지어진 이름 두 글자.

이런 시절, 나의 쌍둥이 언니와 나

어린 나이 때 우리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이름'을 가지고 변명을 만들어 놀기를 좋아했다. 내 이름은 그 놀이의 주 타깃이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들려오는 언니의 이름과는 겨우 모음 하나가 (그것도 작대기 하나가 더 얹어진) 다를 뿐이었는데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내 이름은 늘  몇 번이 되물음이 있어야만 제대로 불러질 수 있었다.


사실, 이름에 대해 불만이 생겼던 것은 단순한 놀림 때문은 아니었다. 놀림을 받고 돌아와, 퉁명스럽게 따졌던 내 이름의 연유에 대해 아버지가 내게 했었던 가벼운 농담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름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왜 내 이름은 '내  이름'이야?라고 묻는 내게


"쌍둥이가 태어날 줄은 아빠도 몰랐지 뭐니, 그래서 네 언니 이름을 미리 지어뒀는데 네 이름을 생각하지 못한 거지. 그래서 어떻게 지을까 하다가 단숨에 지어버렸네-. 껄껄껄"

'우에에엥-', 금이야 옥이야 하는 딸의 이름을 정말 이렇게 지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말에 '이름'이 라는 게 '존재' 혹은 '가치'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구나 하는 어렴풋한 깨닮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내가 정했던 내 이름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보내게 된 것을 보면.


  │내가 정한 내 이름, 가랑비메이커


가랑비메이커, 이 공간에서도 벌써 몇 번이고 설명했던 6글자다. 중학교 2-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는 미술 시간이었고 곳은 미술실이었다.


 각자만의 명함 만들기, 시간이었다. 명함 하면 이름, 이름 하면 또 내겐 여러 숱한 의미들이 줄줄 잇는 것이었다. 가명이어도 괜찮다던 선생님의 말에 며칠이고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 당시 묵상하던 큐티책에서 보았던 가랑비메이커,가 떠올랐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낭만적이고 따스했던 의미의 6글자.


그렇게 시작되었다. 교과서와 연필 그리고 소지품들에 어딘가 낯섦을 떨쳐낼 수 없던 3글자의 이름이 아닌, 내가 정한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을 큼직 큼직하고 새겨놓기 시작했던 것이.


그리고 어떤 일을 시작하든 내 또 다른 이름, 가랑비메이커를 소개하며 점점 커지던 목소리가 자신감으로 반짝이던 두 눈이 내 삶을 바꿔가기 시작했던 것이.



│가랑비메이커로서 서는 힘


어느 순간에서도 나는 내 이름이 나를 세우던 힘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놀림받던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존재의 의미를 다지는 것이었고


나, 라는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이던 것으로부터 조금 물러서 내가 꿈꾸던 한 명의 비전가로서 다가가게 하는 것이었다.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이 나와 함께 한지는 벌써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름으로 세상 앞에 서게 된 것은 아마도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가랑비메이커의 첫 단상집을 출간하면서 였던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나설 걸음이자 힘이 된 여섯글자


조금은 숨고 싶어, 찾게 되었던 이 여섯글자가 이제는 자꾸 세상 밖으로 나를 서게 하는 힘이 되었다. 가상의 공간에서의 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던 해방구를 열어주던 것이 이제는 오프라인 자리에서의 소통까지 가능하게 해주었다.  


지난 포스팅에서 나눴던 18일 '낭독콘서트'에서의 게스트(저자)로 참여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일요일 27일에 '20대가 만들어가는 독서 플랫폼' 유니 북세미나에서도 정말 감사하게도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과 단상집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다.

27일 유니북세미나,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발표


4개의 독서토론동아리가 함께 모여 약 50명 정도의 관중들 앞에 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기주장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이상하게도 프레젠테이션 앞에서만큼은 굉장히 긴장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기대되면서도 그만큼 걱정도 많았던 자리였다.


발표 순서가 되고 앞에 나가는 순간, 내가 한 가지 다짐을 했던 것은


'나는 지금 이 사람들 앞에서 개인 '김아무개'가 아니라

'가랑비메이커'라는 비전가 혹은 작가로서 나온  것이다'라는 거였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발표 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발표를 지켜보던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상태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도 이전의 내 이름으로 하던 교류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깊이 있고 신중한 대화들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이들에게서 '가랑비메이커'로서 서고자 했을 때 그들은 정말 나를 '가랑비메이커'로서 바라봐주었고


나 역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 앞에 설 수 있었고 그다음, 내가 서게 될 곳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갖게 되었다.


가랑비메이커, 로서 하고자 했던 일 가운데는 분명 나를 아프게 만든 것도 있었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능하게 했던 이 여섯글자를


나는 어느 순간에서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잊지 않고 불러야겠노라고 다짐했다.




가랑비메이커 공식 인스타그램 @garangbimaker

가랑비메이커 공식 이메일 imyourgarang@naver.com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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