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동전이 제일 좋아
왠지 중요한 걸 잊고 나온 것만 같았는데 역시나 지갑을 두고 나왔다. 홀로 나온 외출이 아니었기에 함께 나온 언니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서 1회용 카드를 발급받았다. 약속 장소가 있는 역에 도착해 카드를 반납하자 쨍, 하고 오백 원짜리 동전이 떨어졌다. 오백 원을 손에 쥐자마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도 재킷 주머니에 얌전하게 들어가 있던 오백 원짜리 동전을 습관처럼 매만졌다. 카드는커녕 지폐보다는 동전으로 용돈을 받던 시절, 백 원보다 크고 수려한 학을 등진 오백 원이 좋았다. 은색 동그라미가 작은 손바닥에 올려질 때면 늘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무얼 사 먹지, 포토카드를 살까?” 사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단단하고 묵직하던 무게에 괜히 든든해지곤 했다. 무겁고 성가시게 짤랑거리던 소리에도 천 원짜리 한 장보다도 오백 원짜리 두 개가 더 좋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야 동전보다는 지폐가, 지폐보다는 카드가 편하지만 그래도 우연히 만난 오백 원은 언제나 작은 반가움, 든든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 재화가 가지는 가치와 관계없이 그것에 스며든 추억 때문일까? 5만 원짜리 지폐를 보았을 때에도 느껴본 적 없는 아련하고 산뜻한 기쁨을 나는 오백 원을 통해 느낀다. (500원 주는 사람 좋아, 무심코 쥐어준 그 동전은 내 방 기뚱이라는 이름의 돼지저금통을 배부르게 하니까.)
당신의 인디, 가랑비 @garangbimaker
/매일 한 문단을 남깁니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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