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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Aug 19. 2019

유행하는 것들에 반문을 던지는 일

넓은 숲도, 나무 한 그루도 진실과 멀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

나와의 대화 1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



“커다란 숲 가운데 작은 구멍만을 내어 보여주는 한 그루의 나무도

한 그루의 나무의 이미지를 복사해 만들어낸 숲도 진실과는 다르다.”



 엊그제 플레이리스트를 모두 지웠다. 오늘은 보기로 결심했던 영화 리스트를 절반으로 줄였다. 유행하는 것들에 다시 한번 반문을 던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제작된 콘텐츠 그 자체보다도 그 안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배우보다는 감독의 인터뷰가 궁금했고 괜찮은 음악을 발견하면 반드시 작사가와 작곡가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프레임 속에 그리고자 했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과연 그것을 선택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자라났다. 


 그러한 생각은 책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시작하며 더욱 분명해져 갔다. 나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페이지로 옮겨두지 않는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하루를 지나며 페이지로 옮겨두고 싶은 에피소드를 선택하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장면을 프레임 안에서 당기고 밀어내며 포착한다.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들이 따르고자 하는 가치와 신념을 옮겨놓은 축약된 세계이다. 알게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랫말과 넋을 놓은 채 바라보는 영상, 어느새 외워버린 문장들. 그 모두는 우연히 그렇게 되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민과 계산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창작자의 세계는 정교해지고 그 의중을 파악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파악하고 선별하여야 함을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세계 속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귀와 눈으로 들어오는 문턱을 높여야만 한다. 좁은 구멍으로 보여주는 세계 이면의 것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제된 세계 가운데 진짜를 알아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하루에만 수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계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무와 숲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둔감해졌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텅 빈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천천히 채워나갈 생각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횟수보다는 음미하는 시간을 늘려갈 생각이다. 만만하지 않은 것들 앞에 내게 들어오는 문을 만만하게 열어두지 않을 것이다. 옳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된 것들을 계속해서 찾아낼 것이다. 또한 나의 창작물 역시 깊게 음미하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창작자의 또 다른 사명이 되어야 한다.


 어느덧,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산 지 4년 차. 이제는 열정이 아닌 냉정을 찾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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