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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Aug 12. 2019

작은 연습장을 벗어난 어른에게도 고민은 성장이 된다.

열다섯 그리고 스물일곱, 여전히 흔들리는 계절 속에서


당신과의 대화 1

스물일곱, 여전히 흔들리는 당신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 스스로 내 삶에 한계를 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날 때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지도 모르는데.”


“그래? 사실, 나는 그 반대야. 이제는 흔들림 없는 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지금까지 스스로가 야생초인 줄 알고 흔들리며 자랐지만, 사실은 온실 속 화초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확한 습도와 온도가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



 디자인 회사 소속 웹디자이너 3년 차인 혜린, 스스로 책을 쓰며 지내는 4년 차 프리랜서 작가인 나. 우리는 10여 년을 공백 없이 함께 지냈지만 어른이 되며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은 우리의 일주일을 하루를 다르게 쪼갰고, 그렇게 두 눈을 마주하며 나누는 깊은 대화의 빈도는 계속해서 줄어갔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우연히 시간이 맞은 우리가 함께 호수공원을 산책하던 길이었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미 시작된 대화는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도착하니 꽤나 깊어져 있었다. 모험과 안정, 정반대의 갈증을 고백하고 있었지만, 우리 모두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서있다는 것만은 같았다.


 스물일곱, 이제는 어른이라고 말하기에도 쑥스럽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싶을 때가 종종 찾아왔다. 열심만으로는 손바닥 위에 얹어지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주변을 품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마음을 발견할 때가 그랬다. 그리고 하나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택하고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따금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무력감을 마주하는 지금이 그랬다. 그럴 때마다 누구에게라도 이 무거운 무력감을 쏟아내고 가벼워지고 싶었지만, 매일 이른 아침을 깨우고 단정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이들에게 자신들과 다른 모양의 내 삶이 어떻게 비치고 읽힐지 몰랐기에 두려웠다.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은 스스로 삼켜내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산책길에서는 예외였다. 모험을 즐기지만 안정을 갈구하는 나의 모순적인 생각이 늘 삼켜지던 경로를 이탈해, 입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앞선 혜린의 말을 통해, 그녀가 안정된 길에서 고개를 돌려 모험의 선택지들을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매 순간 새로운 두려움과 설렘을 느끼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썩 위로가 되었다. 가장 자연스럽고 깊게 닿는 위로는 결국,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가볍게 나온 산책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깊어졌고 그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았다. 혜린은 내게 흔히들 ‘안정적이라고 착각하고는 한다는’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과감 없는 이야기 해주었다. 한 직장에서 한 분야에 대해 깊게 경험하고 있는 혜린과 예측할 수 없는 범주에서 예측하지 못한 분야까지 나아가고 있는 내가, 서로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알게 되고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서서 마주 볼 때, 상대의 뒤로 펼쳐진 풍경이 참 아름답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펼쳐질 장면들을 짐작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섣불리 따라나섰다간 숱한 시행착오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눈 대화를 통해 서로가 겪은 시행착오 정도는 거뜬히 넘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참으로 감사한 앎이었고 배움이었다. 


 대화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우리의 공기가 가벼워지기 시작했지만, 조금씩 어두워지던 하늘에서 얇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긴 대화의 끝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10여 년 전의 우리를 데려왔을 뿐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해야 용돈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던 중학생 시절부터 우리는 꽤나 진지했다. 하굣길마다 들르곤 했던 놀이터 벤치에서 나누던 대화 주제는 무얼 해야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잡히지 않는 물음을 품으며 우리는 교실 어딘가에서 각자의 연습장을 펼쳤다. 혜린은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렸고 나는 몇 문장의 시를 적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이 10년 뒤,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연습장을 시원스럽게 펼치지도 못하던 수줍고 겁 많은 아이들이었다. 


 등짝만 한 책가방을 메고 팔짱을 끼며 걸어가던 여중생들이 멀리서 보았을 땐 천진한 웃음을 흘리며 걷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이 보았다면 달랐을 거다. 매일 같이 촌스러운 교복과 함께 삶에 대한 고민을 입었던 아이들은 습하고 찬 계절을 함께 지나왔다. 그 시간을 기억하기에 우리는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도 그 한숨들을 결코 가벼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우리가 작은 연습장을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다섯의 우리가 그리던 자리 가까이에는 스물일곱의 우리가 있다. 어른이 된다면, 그 자리에 닿기만 한다면 굳건히 나아갈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닿지 않는 암흑 속을 헤매고 있지 않다. 이제는 포기할 만한 무언가를 쥐고 있고 흔들리면서도 나아가야 할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다. 곁에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친구가 있다.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지만 여전히 도전적인 어른으로 자란 내가 있다. 생각보다 해낸 게 많이 있었다.   


 불안한 현재에 등 떠밀리듯 여행한 과거에서 마주한 여중생들로부터 ‘괜찮아. 참 잘 왔다.’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 든 겁쟁이가 되어버렸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었다. 오늘의 고민은 실패나 패배의 조각이 아닌 성장의 흔적이었다. 


 깊고 긴 대화를 마치니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다. 한층 시원해진 바람과 더욱더 짙어진 초록과 하늘 위 둥둥 떠 있는 구름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몇 시간 대화를 했을 뿐인데 생각의 변화를 따라, 눈앞의 풍경마저 달라져 있다. 푸른 길을 걸어가며 등을 보이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내일의 우리를 기대하는 이야기였다. 산책을 위해 만났던 길목에서 한결 가볍고 밝아진 표정의 혜린과 인사를 나누며 생각했다.  



 열다섯, 스물일곱. 그리고 또 언제 우리는 흔들리며 새로운 계절을 넘어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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