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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Nov 17. 2019

한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정이 도착했다

낡은 빌라에서 낯선 얼굴이 인사를 건네왔다.

당신과의 대화 6

익숙함 속에 처음을 전해준 당신



“403호입니다. 새로 이사 왔는데 떡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나에겐 너무도 익숙하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 삶의 자리가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 된다. 엊그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던 길에 마주했던 낯선 얼굴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1-2분 만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단정한 차림에 밝은 미소라니 어색했다. 그리고 낯설었다. 이 낡은 빌라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지만 인사를 건넨 사람은 처음이었다.  


 누가 이사를 왔나 봐. 인사를 해주더라고. 언니에게 전하니 인사를 했어? 하고 놀랬다. 응. 인사를 하더라니까. 새 이웃이 인사를 건네는 게 뉴스가 될 만한 요즘이라고 실감했다. 


 오늘은 늦은 외출을 나서려고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단정한 차림의 밝은 미소를 띠던 그 얼굴이었다.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들고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택배도 아닌 검침도, 배달음식도 아닌 이유로 누군가 종을 울린 건 또 처음이었다. 모든 게 지겨울 만큼 익숙한 이곳에 며칠 새 처음인 것들이 생겼다. 새 이웃의 새로운 시작이 오래 머문 우리에게도 처음을 전염한 것 같았다.


 언니와 둘이 살기 시작한 이곳의 첫인상은 하얀 입김이 멈추지 않는 겨울이었다. 두 해를 지나며 여러 계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움츠린 어깨가 좀처럼 펴지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정이 도착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웃의 정.


 나는 어색하게 굳은 얼굴을 풀고서 접시를 받아 들고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냉장고 안에 있던 마카롱 두 개를 집어 들고서 처음으로 2층의 계단을 올랐다. 이 빌라에 우리 집이 아닌 현관의 벨을 처음으로 눌러보았다. 웃으며 간식을 나누고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이곳에서의 겨울이 기다려졌다.


 이웃이란 단어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얼굴에 조금 더 짧은 공백을 사이에 둔 채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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