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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Oct 18. 2019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하천이 흐르고 있나요.

슬픔의 하천이 범람하기 전에, 오래도록 바라봐주세요.

나와의 대화 3 

내 안의 흐름을 오래 잊고 있던 사람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의 흐름을 기억해야 한다.”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던 중에 <굴포천> 표지판을 발견했다. 굴포천은 우리 동네 작은 육교 아래에서만 흐르는 하천인 줄로 알았는데 그보다 더 먼 곳에서부터 흘러왔고 또 어디론가 멀리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20여 년만에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지났던 동네의 굴포천. 그 익숙한 이름의 하천은 고작 몇 걸음이면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데, 끊어진 건 하천이 아니라 내 좁은 시선과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좁다랗게 흐르다가 어디선가 다시 넓어졌을 굴포천. 새파란 표지판 위 하얀 고딕체의 굴포천이라는 글자를 익숙하게 지나던 건 우리 동네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또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고요히 흐르고 있는 굴포천을, 다시 낯설게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지금처럼 익숙하고도 낯섦이 뒤섞인 감정일 거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낯설게 마주할 수 있는 하천은 육교 아래만 있는 건 아니다.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흐르고 있는 하천은 과연 늘 그 자리에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다며 지나쳐버린 상처의 자리, 기나긴 그리움이 만들어낸 깊은 우물과 깊은 지하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기억들. 그 모든 것을 품으며 흐르는 나의 하천 역시 언제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알아채는 것과는 관계없이.


 단단한 표정과 활기찬 걸음에 가려져 있던 고요한 흐름은 이따금 예고도 없이 엉뚱한 곳에서 역류왔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어른이라는 이름의 사치가 계속해서 곪아가는 상처를 방치한 탓이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는 거야.”라며 뜨거워지는 얼굴을 하늘로 젖히는 게 전부였던 나는 알지 못했다. 상처와 감정은 정지된 상태로 머물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숨을 쉬며 자라고 있다는 것을. 비가 오는 날이면 불어서 범람하는 하천처럼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하나의 하천이 하나의 줄기로만 한 곳에 갇혀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도 언제든지 익숙한 감정이 범람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그 감정 앞에 바보처럼 멈춰 있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먼저, 지금 마주한 내 슬픔의 하천을 오래도록 바라볼 것이다. 어디서든 더 빨리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 슬픔에게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무력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도록. 마지막으로는 인정할 것이다. 내게는 오래도록 마르지 않을 슬픔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가지 더.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하천이 존재하듯, 내 마음에도 슬픔의 하천만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하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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