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법

2020년 첫 완독서.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by 가랑비메이커


책을 만난 길

책의 시간을 운영하는 서정 언니에게서 추천받고 빌려온 냉정한 이타주의자.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라는 카피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는 아니었어도 열정으로 핏대를 세웠던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금방 사그라졌고 우스운 실수를 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올해 내가 키워야 하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란 걸 일찍이 알았기에 이 책은 지금의 내가 읽기에 적기였다.


책을 읽으며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무턱대고 실천하는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탄탄한 자료를 통해 밝힌다. 생소한 어휘와 원리가 낯설어서 초반에는 더디게 흘러갔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점차 익숙해져서 이후론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지적한 점 가운데 가장 마음이 동했던 부분은 '단순히 마음의 부채감을 덜기 위해 던져놓듯 기부하는 무심함은 이타주의적 행동이 될 수 없다는 것, 더 나아가 단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행해지는 기부는 더 나은 곳에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이타주의라고 함은 단순히 감정적인 열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관점이 함께 있어야 한다.


대학 시절부터 용돈과 아르바이트 월급을 아껴, 매달 아이들을 위한 후원을 했고 이후 기부처를 옮겨 한 아이만을 지속해서 후원하고 있으며, 이따금 적지 않은 돈을 일시적으로 기부하기도 하는 내게 이 책은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게 했고 동시에 나야말로 저자가 지적하는 열정만 있는 괴짜 이타주의자는 아닌가 돌아보게 됐다. 다행히 그의 관점에 의해서는 내가 하는 후원이나 기부가 괜찮은 선택에 속했지만, 일상의 선택에서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책 속 하이라이트

1. 노동착취 공장 노동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장의 물건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일이 될 수 있다. *극빈곤층 노동자들과 중산층의 구매자들이 바라보는 삶의 질은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공장 일자리를 잃게 될 때 다수의 노동자가 성 매수 혹은 더 가혹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2. 공정무역의 상품을 구매할 시, 실제 혜택이 돌아가는 쪽은 가난한 나라의 농부가 아닌 중개거래 업자들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엄밀히 말해, 공정무역을 구매할 이유가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3. 자연재해 등 세계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 발생할 경우, 조금 더 가치 있는 (효율적인) 기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와 지역에서 발생한 재해에 기부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기부금이 한 곳으로 쏠리는 경우, 넘치는 기부금을 처지 하는 방법에 전전긍긍하는 곳과 기부금이 없어 피해를 키우는 곳의 간극이 커진다.


4.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 모두가 구호협회나 비영리단체에 일할 필요는 없다. 내가 차지한 한자리가 내게 적절하지 않으면 오히려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고 단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살려 기부를 위한 돈벌이를 통해 세상에 돌려주는 방법도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단단히 얼어있던 내 머리를 깨는 사실과 정보들이 가득했다. 윌리엄 맥어스킬은 이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단순한 기부 외에도 직업의 선택을 이야기했는데 그 부분에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살린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여 더욱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이타주의적인 삶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살아내기로 하던 때를 떠올렸다. 다시, 문장과장면들의 목표를 "선한 열망"으로 정해둔 올해 초를 기억하며 냉정하고 이성적인 이타주의자의 삶을 살아내겠다고 결심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언젠가 참석했던 월드비전 패밀리 데이가 떠올랐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누군가 나와 동행한 이에게 물었다. "아이 몇 명이나 후원하세요? 저는 지금 7명 째예요." 물음에 함께한 친구는 당황해하며 "아직은 시작을 안 했어요. 시작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했다. 그러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나를 향해 물었다. "아, 그런데 여긴 패밀리데이인데. 그럼 친구분은 몇 명 하셨어요?" 패밀리데이는 후원자의 동반 1인이 가능한 자리였고 나는 그의 무례함에 입을 닫았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후원을 이어가는지까지는 감히 생각해볼 마음도 없지만, 자신의 이타적 행위를 다른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강요하는 듯한 오해를 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되려 다른 누군가가 순수히 결심할 기회를 박탈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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