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눈물로 성장한다

아버지와 딸, 가랑비의 특별한 하루

by 가랑비메이커

지극히 가랑비적인 열두번째 이야기

<우리는 누군가의 눈물로 성장한다>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을 일이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크고 작은 감정들이 모여 서러움과 서운함이 고개를 들게 했고 그게 아닌데, 하면서도 내 감정들에 대해 쏟아냈던 퇴근길이 길고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해

'그랬구나, 아빠가 미안해. 오늘은 나가서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라는 답문에도 마음이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늦을 거라는 말을 퉁명스럽게 뱉어놓고는 뱅뱅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가만히 눈물을 쏟았다.


서운함으로 쏟았던 눈물이 미안함으로 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이어폰을 꽂고 아무 생각 없이 내다본 창가에는 지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들이 있었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아버지도 저렇게 지쳐있을까, 왜 나는 그리도 가까이에 있었으면서

저들에게서 보는 쓸쓸함을 내 아버지에게서는 보지 못했을까-


매년 가을이 올 때면 조금은 가라앉게 되는 내 아버지의 가슴속을
나는 왜, 조금 더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늘 내 하루를 궁금해하는 아빠에게 오늘은 내가 더 묻고 싶었다.

아빠의 하루는 어땠는지,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눈을 떴고 또 내일에 어떤 소망이 있는지



젊은 날의 내 아버지

이곳에 전부를 남길 순 없지만 아빠는 오늘, 내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젊은 날의 아버지, 사회초년생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어린 우리를 길러내던 젊은 아빠의 기억들-

그리고 지금 너무 많이 자라 버린 딸들을 보며 가끔씩 불쑥 올라오는 묵직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아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묵직한 감정들을 숨기지 못하고 몇 번이고 눈이 붉어졌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나도 따라 눈이 붉어졌다, 말기를 반복했다. 조명이 어두운 가게여서 우리가 앉은 자리가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젊은 시절의 아빠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를 빼다 박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그 말이 어릴 적에는 참 듣기 싫었었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예쁘지 않다는 말로 들릴 정도로 나는 많이 어렸던 시절이었기 때문에-그 말에 나는 늘 아니라며 박박 우겼고 그런 나를 보면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빠 딸, 아빠 안 닮으면 누굴 닮겠냐고

그런데 오늘, 나는 정말 아빠와 많이 닮아있었다. 아빠가 지나온 젊은 날들 그리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시간들이, 아빠는 모든 것이 네게 더 나아졌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느끼고 결심하는 것들이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아빠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내가 내 스스로 내 길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늘 대견하다고 하면서도 그 뒤에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아빠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늘 있다고, 언제든 무엇이든 내게는 다 해줄 수 있으니 혼자 끙끙대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아빠가 그럼에도 내가 결국 혼자만의 힘으로 끝을 보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결코 아빠를 의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게 바로 내가 빼다 박은 아빠의 모습이라는 사실도.


시간이 날 때면 늘 바다를 보러가는 우리
아빠는 네가 사회에 나가도 언제 어디서든
지금 가지고 있는 감성, 낭만을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아빠를 닮은 수많은 부분 중에서 하나는 바로, 가슴 속에 숨 쉬는 소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겉으로만 보면 눈물 한 방울 흘려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런 강렬한 인상을 소유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또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몇 권의 일기장이 아직 침대 밑에 숨겨져 있는 낭만적인 구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


아빠는 내게 단 한 번도 공부에 대해, 진로에 대해 어떠한 길로 가기를 바란다고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내게 '네가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고 푸른색 교복을 입고 있었던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어.'라고 답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빤 내게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글을 쓰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지지를 보내준다. 그러면서도 늘 잊지 않는 이야기는 네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되 진심만을 담기를. 그것이 너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약속한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올 봄, 아빠와 나


아빠에게도 아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아빠가 아빠의 아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가끔 아빠에게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만큼이나 낯설 때가 없다. 내가 하루에도 수없이 뱉는 아빠라는 단어가 한 때는 아빠의 입에서 역시 수도 없이 나왔다라는 사실을 - 잊고 살 때가 많다.


아빠는 요즘 부쩍, 떠나버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뵙고 싶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이제 철이 들고 이제 다 큰 두 딸마저 철이 들었다고,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곁에 있다면 얼마나 흐뭇해하실지. 그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러면 나는 가만히 아빠의 손을 잡는다. 내가 그 흐뭇한 표정을 아빠에게서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아빠가 들려주는, 내가 암만 거슬러보아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그 유년의 이야기들에는 즐거움이 가득한데 그 끝엔 늘 깊은 한숨과 진한 그리움이 남겨져 가만히 아빠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을 언젠가 내게서 찾게 될까- 나는 더욱 세게 아빠의 손을 잡는다.



식사 후 아빠와 들른 카페에서, 나는 늘 민트초코- 아빠는 아메리카노+시럽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남아, 카페에 들렀다. 아빠와 나는 커피를 다 비워내고도 이야기가 남아, 한 잔의 커피를 다시 시켰고 더 많은 시간들을 공유했다. 아빠가 닿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 그리고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아빠의 시간들



아빠의 투박한 손과 아직 고생을 모르는 내 손

그 시간들에 가끔 크고 작은 오해들로 서로를 아프게 할 수 있겠지만 오늘 이 시간들처럼- 결국엔 아빠와 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와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스웨덴세탁소- 두 손, 너에게 (Feat. 최백호)(링크)에 아빠는 발걸음을 늦췄다.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




글쓴이 : 가랑비메이커 @garangbi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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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garangbiamaker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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