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당신에게도 곁을 주세요

이제는 나를 위한 내가 되려는 나에게

by 가랑비메이커

지극히 가랑비적인 열세번째 이야기

<가끔은 당신에게도 곁을 주세요>



| 나를 향한 걸음들


어릴 적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내 포지션은 어딘가 보통 또래들과는 달랐다.


어쩌다 보니, 쩔쩔 매는 친구의 손을 잡아끌고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정신차리고 보니, 손가락질 받던 녀석 대신 내가 그 시선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랬는지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없지만 정말 언제부턴가, 어째서였는지 나는 친구들의 해결사 역할을 해오곤 했다.


누가 시켜서는 아니었을텐데 천성이 그랬는지, 놓여진 상황에 떠밀려 그랬는지.


항상 누군가를 대변해주기 바빴고 내가 아닌 이에 의해 엎질러진 상황들을 정리하는데 내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찾아오는 걸음들은 더 늘었고 더 질어졌다. 코묻은 고민들을 안고 오던 이들이 어느샌가 무거운 쇠덩이를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또 그 무거운 것들을 받아들기 바빴다.




| 가랑비, 충분히 안아주고 싶었어요


가랑비메이커, 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8년 정도가 되어가고 그 이름으로 모르는 얼굴들과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한지 어느덧 3년.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했던 글들이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단상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내 글들은 아름답거나 환한 언어들이 아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어린 날들의 나는 여렸지만 강해야만 했고 그랬기에 감춰내야 했던 것들을 작은 노트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게 가랑비, 글의 시작이었다.



홀로 어둠 속에 놓인 줄로 알았는데, 작은 불씨를 들고 보니 곁에 헤매이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글을 쓰며, 내 글을 통해 찾아오는 걸음들이 반갑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놀랍게도 겨우, 글을 쓰며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져나가는 나일 뿐인데 찾아오는 걸음들이 늘었다.


다이렉트메세지만으로는 그 깊이를 감히 눌러 담지 못해, 2년 전에 새로 만든 메일함에는 숱한 한숨과 눈물들이 고여 든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서로의 이름과 나이, 곳을 모르는 이들에게서 온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내게 놀라운 감격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삶, 어느 한 구석을 알아가고 안아주고 조금이나마 보태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축복이었다.



여러 이야기를 담은 메일들은 몇 주를 간격으로 수개월을 이어가기도 하고, 또 가끔은 좋은 소식과 함께 드문 드문 찾아오기도 했다.


또 그러다,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따듯한 차 한 잔과 더불어 오히려 내게 큰 위안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 가끔은 내게도 곁을 줄 수는 없을까


깊고 진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웃음 번지는 날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하루, 일주일 또는 그 이상의 삶을 알아가고 들어주고 참견해 간다는 게 마냥 감사하기도 하다가도, 문득 그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내게도 그런 터놓을 곳이 있더라면, 내게도 그런 곁이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지



어릴 적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이어져온 나의 위치와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맺어가는 관계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나는 왜 여전히 헛헛함을 지우지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익숙한 방법으로 마주하게 된 어느 독자와의 이야기에서였다.


가랑비님께 메일을 드리기가 어려웠어요. 항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민하실텐데 저마저 또 위로를 바란다고 선뜻 찾아가기가. 가끔은 가랑비님도 마음이 무겁고 또 반대로 들어주었으면 할 때가 있을테니까요.


이미 홀로서기를 했다라고 착각하며, 누군가를 붙잡아 주는 것만이 남겨진 일이라 생각했던 내게도 가끔은 곁이 필요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내게 남겨줄 곁이


어떤 말로도 선뜻, 아니라고 답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내게, 그런 여유를 안겨주지 못했던 퍽퍽한 사람이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나는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조금만 더 가보자, 하면서 나를 외면했는지도.



그래서 이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해보려 한다. 내가 나를 다시, 뜯어보고 덮어두기도 하고 꼬매주기도 하면서 내게 곁을 주는 그런 너그러운 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향한 걸음들을 기대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대면한 적 없이도 맞물린 상처, 삶의 조각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거기에서 다시, 한 번 나는 글이라는 것을 종이 위에서만 머무르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으니까.


다시,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내가 내게 틈을 주어야 다른 이들에게도 넉넉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가끔은 당신에게도 틈을 주세요.
오늘 더 넉넉한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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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통해, 나를 보았으니

우리는 언제라도 거울이 될거예요,

닮은 구석, 하나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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