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에 당신을 초대해요.

사소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by 가랑비메이커

지극히 가랑비적인 열네번째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에 당신을 초대해요.>





4월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고

내겐 월요일보다도 힘겨운 수요일 오후.


"살아가는 걸까, 살아지는 걸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지기 시작할, 딱 그즈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같은 작업을 하다 문득 툭-고개를 드는 무력감.


그럼에도 나는 이 무력감이 오래지 않아, 삶에 대한 긍정에 떠밀려 버릴 것을 안다. 내게 다른 이들과는 어떤 힘이 있는 것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드문 드문 찾아오는 무력감과 우울감을 밀어낼 순간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
사소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가끔은 복잡한 지하철이 좋아


지하보단 지상을, 정확한 도착보다도 조금 밀리는 차 안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가끔은 버스가 아닌 지하철이 좋다.



서둘러 귀가 하기 전, 잠시 들른 작은 책방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날이면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기다린다. 이어폰을 빼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괜히 빠쁨 속에서도 쉼을 찾을 줄 아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지하철에 올라타서도 파란 화면이나 전광판이 아닌, 멍하니 보는 창 밖이 아닌 페이지 너머의 활자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때늦은 밥이 주는 따스함


그 어느때보다도 정말 바쁜 날들이 이어지는 3-4월.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 오히려 한가할 정도로 주말과 퇴근 후 일정이 빠듯했던 요즘. 저녁을 거르기 부지기수였던 나. 그런 나의 뱃 속 사정을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내 식구들. 아무리 바빠도 피곤해도 하루에 딱 한 번인 함께 하는 식사는 항상 지켜왔던 우리였는데 그 룰을 깨어간지 오래인 나이다.


25일 월요일 늦은 밥, 아빠의 파전이 함께 했다.


10시 혹은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귀가할 때도 있지만 식구들은 깨어있을 때면 대충 먹어치우려던 내 곁에 와, 하나씩 무언갈 보탠다. 그리곤 피곤한 눈 비벼가면서도 내 곁을 지킨다. 때 늦은 밥이라지만 홀로 삼켜내지 못하도록 그렇게 옆에 와, 내 하루를 묻는다. 나는 그런 따스함을 사랑한다.





┃나, 혼자가 아니래요.


작년 가을, 책을 내고 나서 지금까지 책방유통에 여러 작업들과 마켓참여 그리고 새로운 일의 시작으로 인해 정말 정신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분명 내가 좋아 시작한 일들이지만 글이라는 건 결코 혼자할 수 없음을 안다.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나를 떠난 문장들은 새로운 의미들을 더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작은 피드백들도 내겐 큰 힘이 된다.



최근 브런치북프로젝트 준비도 그랬고 독립출판 서적 공동집필 작업도, 인터뷰 요청도 그랬고 무엇이든 스스로 보기에 조금이라도 덜 어설퍼야 하는 나는 그렇잖아도 적은 잠을 줄여가며 작업에 열중했다.

그러다보니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곁의 사람들도 그랬지만 어느때든 나를 찾아주던 독자분들에 대한 응답도 조금씩 늦어지던 참이었다.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되어가고 주변을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한 마디, 두 마디씩 남겨진 이야기에 '글'을 통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해주는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들이 그저 감사하다.





┃ 이정도면 충분해요.


며칠 전 그간 직접 찾아뵙지 못했던 (내 책이 입점된 작은 독립)책방들을 들렸다. 아무래도 일을 시작하고나니 책을 보내야할 때마다 직접 가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굉장히 나름대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내 책들을 독자분들께 연결해주고 있는 고마운 공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찾아가는 걸음도 쉬이 떼어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책방이곶에서 받은 하얀 봉투


지난 주말 들렀던 책방들 가운데 한 곳에서 지난 입고분에 대한 정산을 하얀 봉투에, 빳빳한 지폐를 넣어서 주셨다. 정산이야 이전에도 여러번 해왔지만 이렇게 흰봉투에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쑥스럽기도 했고 기뻤다. 숱하게 고민하며 써내렸던 책에 대한 값을, 직접 만져보고 쉬어보고 한다는 게 또다른 의미가 되었고 동기가 되었다. 거한 액수는 아니었지만 내게 힘을 주기엔 충분했다. 언제까지고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다.





비가 온다고 연락을 주시다니요.


마치 김용택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처럼 내게도 그런 근사한 밤들이 있다.

가랑비라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늘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가랑비님, 오늘 비가 와서 생각이 났어요.' 라고 시작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메일함에 담겨 나를 기다린다. 가랑비가 아닌 그저 한 개인의 나로서 이미 먼저 관계해온 이들 역시 비가 올 때면 장난 삼아, 오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들도 가끔) 그럴 때면 괜히 머쓱해지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



내가 불리우고 싶은 이름으로 불리운다는 것과 기억되고 싶은 순간에 떠올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격인지.

내겐 이런 순간들이 있다. 사소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힘을 지닌 순간들이 내 무력을 밀어내고 그안에 뭐라 이름할 수 없는 의지를 부어준다. 무엇이라도 괜찮을 것만 같은 근사한 기분은 덤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에 당신을 초대한 이유는 당신의 삶, 그 어딘가에 숨어 있을 멋진 순간들을 발견해내기를 바라서다.



버스 아닌 지하철을 타는 것, 늦은 밥, 응원 한마디, 비오는 날의 연락처럼 심심하고 새로울 것 없어보이는 순간들이 당신의 곁을 오늘도 순진한 표정을 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짠, 사실은 내가 너를 붙잡고 있었는데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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