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여름밤, 그늘

가랑비, 그녀에 대하여- 그 첫 번째 이야기

by 가랑비메이커

지극히 가랑비적인 열 한 번째 이야기

<열입고의 여름밤, 그늘>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가랑비, 그녀에 대하여

문득, 책상 정리를 하다 발견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녀에 대하여>, 이 책이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군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에 대하여 어떤 페이지들이 남겨질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어떤' 그녀로 수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꼬리를 물던 기억이 하나 있었다.


지난 학기 나를 내적으로 성숙시켰던 전공 '집단상담' 첫 수업이 떠올랐다. 내담자 집단에게 요구되었던 첫 대화의 틀은 내가 아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되어 나에 대해 소개하는 것.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를, 내가 아닌 이가 되어 소개해본다면 반쪽 자리가 아닐까.

결국 나는 내가 제일 잘 알 텐데, 하는 자만에 빠지던 순간 상담은 시작되었고 누군가가 되어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에게선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지 못하는 눈물이 터졌다.


그때, 알았다. 제 3자가 되어 보는 나라는 사람은 그 안의 모든 감정을 샅샅이 나열할 수는 없어도 그 관계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가며 알아갈 수 있겠구나.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의 책과 지난 학기의 기억들이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 있는 <그녀에 대하여>라는 하나의 매거진을 만들었고 일기를 쓰듯 쏟던 감정들로부터 조금 멀어져, 나의 전신을 바라보는 작업을 시작하게 했다.


이제, 그 여기서부터 그녀에 대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그녀의 열일곱 여름밤, 그늘

어느 여름밤이었다. 날이 더웠고 모든 것이 축 늘어졌던- 그 유난히 지치던 날들의 연속이었고 어둠이 더위를 삼켜가기를 바랐던 그날은 비가 왔다.

언제나 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이 메말라가던 그날의 그 비는 마치 내가 가뭄에 갈라져버린 흙바닥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뻤다고 했다.


쏴아-, 하고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장대비도 아니었고 길게 이어지던 장마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 반가웠고 단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면서 다시 쨍쨍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야외 수업을 하던 날이면 모두가 나무 밑 그늘을 찾기 바빴으며, 그녀 역시 그늘을 찾아 잔디 위를 뛰듯 걸었다고 한다.


'가랑비야, 여기 그늘이다. 이쪽으로 와' 하던 친구의 한마디에 떠올랐던 정호승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중략)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후략)


흔히들 비유적으로 말하는 그늘이라는 게 어둠이겠고, 아픔이겠지만 그런 그늘을 사랑한다던 시인의 고백을 그녀는 그날에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뜨겁고 뜨거운 날들에야, 그늘이 품어주는 품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깨달을 수 있으며
결국, 삶 가운데 아프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보고 나서야 '그늘'이라는 것의 견딤과 가치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게 되던 여름밤, 여전히 그녀가 이해한 바가 온전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결심했다.
그늘이 있는 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그늘을 몰아내고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 그들의 그늘 있는 삶에 서서히 스며드는 가랑비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쉴 틈이 되어주고 안는 품이 되어주겠노라고.

가랑비메이커, 첫 단상집 작가 소개글


그날 이후 그녀는 글을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녀에게 드리워진 그늘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곁에 와, 그늘 안에서 쉼을 얻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여전히 펜을 든다는 그녀.



가랑비메이커, 4번째 매거진 <그녀에 대하여> 첫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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