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펜을 들고 싶어져요, 이전보다 더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지극히 가랑비적인 이야기]
#story 9 <비를 머금은 문장들>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진다고,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종일 들고 다녀야만 한다고.
야외에서 하고 싶던 일들을 다음으로 미뤄야만 한다고, 혹은 별다른 이유 없이 축 늘어지는 게 별로라고
많은 이유들로 비 오는 날은 상실의 이미지 혹은 이별의 계절을 데려오지만
나에게 비 오는 날들은 달랐다.
나, 가랑비메이커는 언제부터 우산 없이도 비를 맞으며 다녔으며 내게 비가 오는 날의 이미지는 어떤 글을 쓰게 했는지ㅡ.
오늘을 시작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여기까지 가져온 비 머금은 문장들을 통해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데려오려고 한다.
'비를 머금은 문장들'이라는 타이틀은 2009년 02월 19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작가라는 이름을 막연한 꿈에서 현실로 데려와야겠노라고 글썽이며 다짐하던 그때, 썼던 '비를 머금은 노래'라는 글에서 연유했다. [독립잡지 싱클레어 39호 '여기까지 가져온 노래뿐' 46-48페이지]
비를 왜 좋아했는지, 는 여기 이 글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표현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으나 그 이유가 지금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누구를 좋아할 때 그 이유가 없다라고. 그저 그이기에 좋다는 것처럼-
나도 그냥 비가 좋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은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싫다던 비 오는 거리들을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종일 걷고 또 걸었던 날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주인공보다도 주인공 친구에게 마음을 썼던 나는 날씨도 환영보다는 미움을 받던 비 오는 날에 더 마음이 쓰이지 않았나. 그 날들에게서 나를 보지 않았나.)
비, 하면 빠질 수 없었던 것이 나에게는 노래였다.
비 내리는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읊조리는 말소리에 얹히면 좋은 장단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잊힌 기억들과 함께 잊힌 노래들이 찾아왔으니까.
'비를 머금은 노래'라는 글은 지금 생각하기에는 조금은 귀엽고 우습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절절했던 첫사랑 아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함께 비를 맞으며 공원을 종일 걸었고 그러다 잠시 옷을 말리기 위해 오두막에 앉아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두 개의 우산이 하나의 우산이 되던 날. 젖은 공기 사이로 들려오던 노랫말들이 있었고 또 어느 날, 그 하나의 우산마저 그와 함께 떠나던 밤이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며 나는 그 얼굴보다도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고
이제는 그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가랑비처럼 서서히/ 그저 잊어내고
그러다 또다시 떠오르는 그 노랫말들은
그냥 그렇게- 밀어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 노랫말들이 시간이 흐르고
서로 다른 얼굴들과 노래들을 데려올 줄이야.
그리고 그렇게 영영 비를 미워하기는커녕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서로 다른 마음으로 펜을 들고 노트북을 켤 줄은 몰랐다.
비를 머금은 노래로 다시 기억해낸 그날의 추억들은 이제 어떻게 덮어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음을 떼어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얼굴들, 그리고 노래들이 다시 나를 안아주는 밤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종일 베란다를 열어두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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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다가도 별안간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문장이 있다.
내가 당신의 그런 문장이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