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무엇이 있든지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사이]
#movie 3. <무스탕 : 랄리의 여름>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지난 주 <무스탕 : 랄리의 여름> 개봉 전 시사 상영회를 다녀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조금이라도 빨리 이 영화에 대해 소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오고 싶었지만 17일 국내 개봉일에 맞추는게 좋겠다고 생각돼, 근질 근질 거리는 손을 묶어두었다가 지금, 여기서 나누려 한다.
터키의 외딴 마을에 사는 다섯자매는 서로를 친구처럼 다하며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소녀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의 물장난으로 작은 마을은 소녀들을 향한 소문과 구설수를 만들어내고 그날 이후, 치욕스러운 처녀 검사와 더불어 외출금지- 그녀들의 자유는 박탈된다. 집 밖엔 높은 담장이 생겨나고 갑작스러운 맞선이 몰아닥치고 하나, 둘 헤치우듯 시작된 결혼에 다섯에서 넷으로 그리고 셋, 둘. 자매들은 뜨거운 계절을 뒤로 한 채 생이별을 겪게 되는데. 그럼에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다섯째 랄리의 자유를 향한 열정.
다섯자매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가까운 사이이지만 갑작스러운 억압과 여러 제약 그리고 정신없이 진행되는 맞선과 결혼의 과정에서 그들만의 성향대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1. 누구보다 특별한 소녀 소냐, 그녀는 억압된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또 낙천적인 모습을 보인다. 배관을 타고 몰래 내려가 사랑하는 이와의 밀담을 나누고 다시 돌아오는 등- 자매들을 들이닥친 맞선과 결혼의 첫 번째 대상이 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프로포즈를 받아내고 만족스러운 결혼을 한다. 억압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줄 아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깊은 곳 음울을 간직한 둘째 셀마, 그녀는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우울한 표정을 보인다. 소녀들에게 강요되는 순결과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어려운 검사. 원치 않은 결혼과 이어지는 순결의 자욱을 확인 받는 장면들에서 다른 네명의 자매들보다도 여성으로서의 감내야하는 지나친 강요, 억압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세상 모든 남자와 잤어요.
처녀라고 말해서 뭐해요.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을 걸
3. 아름다움에 비극으로, 셋째 에체, 에체는 앞서 결혼한 두명의 언니와 마찬가지로 순서가 돌아오자 조금은 덤덤한 모습으로 맞선을 마치지만 혼례식을 기다리면서 우울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다 삼촌의 차를 타고 잠시 나온 틈을 타, 삼촌이 자릴 비운 사이 처음 보는 남자와 차 안에서 관계를 맺는 간 큰 행동을 보이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들이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날 애체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비운의 운명을 선택한다. 애체의 죽음에는 남성우월주의와 여성의 박탈된 존엄성을 담고 있다.
4. 주어진 상황에 순종적인 누르, 누르는 앞선 애체의 죽음에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한 채 자신의 순서를 알아챈다.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랄리와는 달리,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혼례식이 다가오자 커져가는 불안한 마음과 랄리의 말에 함께 도망하기로 결심한다. 누르를 통해 보통의 터키 (혹은 남성우월, 여성폄하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어느 곳)의 여자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자유를 향해 첫 발을 내딛은 랄리, 랄리는 다섯자매 중 가장 어렸지만 누구보다도 주어진 상황에, 부조리에 불만을 품었고 다른 세계를 꿈꿨고 그 첫 발을 내딛은 소녀다. 어쩌면 가장 어렸기 때문에 그 사회의 분위기에 조금은 덜 물들었을 수도 있고 자유로운 생각들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의 흐름이 랄리의 나레이션으로 이끌어지기 때문에 무거운 주제임에도 재치있게 진행된다. 누르의 결혼이 가까이 오고 그만큼 자신의 순서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에 떠날 계획을 세우는 어린 랄리의 모습이 재치있게 그려졌음에도 마음이 아팠다.
1. 바닷가 놀이, 자유와 낭만
영화는 처음, 건강하고 밝고 자유로운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데 어울려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웃고 즐거워하는 얼굴들. 같은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바닷가에서 즐거운 놀이를 하며. (색감이 아름다워서 더욱 자유와, 낭만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 같다.)그러나 이렇게 밝고 건강한 모습도 잠시, 이것을 발단으로 자매들은 가혹한 댓가를 감당하며 모든 제약과 강압 속에서 어린 날들을 보내게 된다
자유와 낭만의 장면들이 가혹한 시대적, 사회적 시선이 의해 문란하고 저속한 것으로 가치 매겨지고 그렇게 많은 것을 박탈 당하게 된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2. 유리 감옥 속 여성
자매들은 종일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작은 것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 같은 장난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사회적인 모습이 아닌 그들만의 결속만이 커지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더불어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촌과 할머니의 감시, 그들의 지인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행동거지에 대해 신경을 쓰도록 강요 받는다.
주변의 시선은 그대로이나 자신들의 자유나 의견은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갇힌 자매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비합리적, 부조리, 모순을 느낄 수 있었다.
3. 모순된 강요, 그리고 희생
3-1. 부모가 없어, 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사는 다섯자매들은 외출이 금지되면서 밖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시즌이 다가오자, 랄리는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고 싶어하지만 이 역시 삼촌에 의해 좌절된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흥미 없는 드라마를 보게 하고 본인들은 마당에서 경기를 본다. 이를 통해 스포츠 역시 오직 남성의 산유물인 것처럼 사고한다는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남성관람객의 비매너적인 행동으로 경기장 측에서 여성관람객들만 받게 되고 다섯자매들도 이를 틈 타, 몰래 탈출을 시도하여 즐거운 한 때를 본다. 남성에 의해 억압되던 것들이 남성들에 의해 다시 철회되는 것이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의 모순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라고 느껴진다.
3-2. 엄격하고 보수적인 삼촌은 아이들에게 시종일관 딱딱한 모습으로 마치 하나의 독제자가 되어 군림하려고 한다. 여성의 순결 그리고 정숙함을 강조하며 아이들의 결혼이 성사될 때마다 스스로 만족된 모습을 보이지만 오래지 않아, 애체의 죽음과 함께 그의 모순 그리고 폭력적 야만적 행동이 폭로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매들이 잠든 시각 수상한 발걸음 소리와 놀란 숨소리가 짧게 들리곤 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있었다.) 그 장면이 결혼식을 앞 둔 자매들에게 다가와 첫 순결을 앗아간 삼촌의 모습이었음이 후반부에 가, 할머니와 삼촌의 대화를 통해 폭로된다.
실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국가에서 적지 많은 수의 여성의 첫 경험이 친인척에 의한 겁탈이라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여성의 순결을 억압하고 강요하면서 그 뒤로는 그들의 순결을 앗아가려는 야만적인 행동들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질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에 잘 담겨 있었고 울분이 터지면서도 이렇게 공론화 될 수 있음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4.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무엇이 있든지
랄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공평하고 모순적인 상황을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오랜 시간 준비해온 탈출, 아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다섯자매들 중 이제 유일하게 남겨진 자신과 누르를 위해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넘겨내며 마침내, 새로운 도전 '이스탄불'에 닿게 된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 어떠한 세상이 펼쳐질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았던 이들의 아름다워, 아픈 이야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부디 그들의 걸음이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나 역시 책, 토론을 통해서 접했던 주제들이었고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무시하고 지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이 존재한고 느낀다.
실로 사춘기가 한창이던 중학생 시절에는 남성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도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공간에 놓이면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틀' 같은 것들이 많이 깨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전의 나는 여성으로서의 불합리함을 이야기 하면서 남성들에게 다르지 않은 불합리함에 대해선 묵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남성이-, 여성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의 순수한 의미로서 더욱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이들에게서 불쾌한 입장을 가져본 적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종종 토론모임이나 사적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여성우월주의와 페미니즘을 혼동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인식들이 하나, 둘 모여 정작 <무스탕 : 랄리의 여름>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어린 다섯 자매들을 다시 냉정한 시선 속으로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급부상 중인 페미니즘의 담론을 통해 더욱 더 신중하고 깊은 개인적 고찰이 필요함을 느꼈다. 우리가 가볍게 흘려보낸 말 마디가 우리를 이상한 사상주의로 만들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잊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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