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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Sep 29. 2021

피지 못한 이름

봉오리로 남겨진 시간들

   며칠 전 우연히 자리하게 된 모임에서 너를 다시 꺼내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이 함께 이어가던 두서없는 대화는 어느새 옛사랑이라는 조금은 촌스럽고 쑥스러운 화두를 데려왔고 하나둘 입을 열었지.


   사랑이라니, 너도 알잖니. 사랑이란 두 음절이 내게 주는 부조리함. 어쩐지 사랑이란 걸 하면서도 사랑이라는 말을 기다리는 얼굴 앞에서는 그 사랑이 더는 나아가질 못한다고, 언젠가 네게도 말했었지. 그렇게 떠나보낸 얼굴들은 여전히 이따금 꿈속에서까지 나에게 사랑해─,


   그 한마디를 듣겠다며 집 앞을 서성이고 있지만 너는 없었어. 그렇게 찾아올 네가 아니었지. 사랑이라는 말 없이도 나를 읽었다던 너였고 그렇기에 우리 사이엔 사랑, 그 사랑이라는 단어는 멀기도 참 멀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옛사랑이라는 말에 그가 아니라 너를 떠올리고 만 거야.


   이것 봐. 사랑이라는 이 부조리함.


   왜였을까. 행복과는 조금 멀었고 속으로 꼭꼭 삼켜내야만 했던 그 시간들, 그 오래된 걸음들을 나는 왜 아직은 낯선 그 얼굴들 앞에 늘어놓고 말았을까. 몇 번의 만남 끝에 등을 보이고 말았던 우리. 피지 못해서 질 수도 없던, 여전히 봉오리로 남겨지고만 그 만남을 말이야.


   네게도 문득 그런 시간들이 찾아올까. 끝내 멈춰야만 했던 우리의 못다 한 날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상상하다 다시 무너져야만 하는 새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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