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나에게
12월의 끄트머리. 모두가 들떴지만 내 마음은 홀로 고요했다. 창밖으로 새어드는 불빛만이 전부인 불 꺼진 방 안에서 깊어가는 밤. 무얼 해야 조금 덜 헛헛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웅크린 자리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은 책장 위 하얀 눈이라도 내린 듯 먼지 쌓인 앨범이었다. 까치발로 간신히 닿았던 앨범이 위태롭게 흔들거리다 떨어졌을 때, 나는 그렇게 첫눈을 맞았다.
환한 낮, 시름없는 얼굴들과 다정한 숨결들.
티슈로 작은 얼룩들을 지워내고 펼쳐 든 세계는 피부에 닿아 있는 계절과는 참 멀었다.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그곳에 닿을 것만 같은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이렇게 계절의 끝이 하나 더 쌓이고 있다. 쉼 없이 벌어지는 그 간격을 이제 더는 어쩔 수가 없어서 얇은 비닐막만 매만져야 했다.
아쉬움으로 느리게 넘겨가는 페이지 사이사이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에 시선을 맡기다 이제는 내가 아닌 것만 같은 어린 눈동자 하나를 마주했다. 그 천진한 어린 빛이 어쩐지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작고 희미해진 사진 한 장을 부둥켜안고서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의 내가 너는 괜찮니.
나, 너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제대로 가고 있는 검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