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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Oct 14. 2021

그녀가 전시를 보는 방법

작품 앞에서 오래 서성이는 이유

   있죠. 나 이전에는 미술관에서 30분 이상을 못 있었어요. 미술도 전시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은 안 느껴졌거든요. 화살표를 따라가면서 앞선 사람들이 한참을 머물고 있으면 괜히 급해지는 마음에, 사실 몇 작품은 건너뛰기도 했어요. 아, 돌아가기 전에는 다시 보기도 했고요. 그래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던 사람들. 그들의 눈엔 제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그들 곁에 머물렀죠.


   그때 내가 발견한 건 액자 속이 아닌 밖에 있었어요. 매끈한 유리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고요한 바다 같았다가도 별안간 파도가 몰아쳤어요. 그러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한 얼굴로 몇 걸음 옮기다 다시 멈춰 선 얼굴들. 

 

   '눈앞의 장면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건 그 안이 아닌 내 안에 담긴 것들이 요동치는 순간이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난 더 자주 더 오래 멈춰 섰어요. 누군가는 그런 내가 성가셨겠지만, 또 누군가는 유리에 비친 제 심연의 바다를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오늘은 이 앞에서 이걸 느꼈어요.


   '슬픔은 고요한 다짐을 분노는 중대한 결단을 상처는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네, 맞아요. 사실은 이 앞이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겠죠. 오늘 밖을 나서면서 가져온 생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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