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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Oct 24. 2021

연중무휴

매일 꺼지지 않는 문장을 밝히는 삶

   연중무휴라는 단어를  때면 안도하곤 했다. 인생은 예측할  없는  투성이인데 어딘가에 언제나처럼 매일 불을 밝히고 문을 열어둔 곳이 있다는  고마웠다. 매일 그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매일 그곳을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마주할  있다는 안심과 위안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책을 팔아야 하는 삶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글을 쓰면서 다른 일도 하던 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글과 책만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이왕 해야 하는 고생이라면 그 편이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처음부터 쉬운 것이야 없을 테지만 남의 돈을 내 돈으로 가져오는 일에는 치사스럽고 서러운 일도 있겠다만, 진정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 바람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뤄졌고 2018년부터 나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전업은 확실히 겸업보다 더 많은 애정과 열정을 쏟는 일이었다. 다른 말로는 더욱 필사적인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며칠은 글을 쓰고 다른 며칠은 주어진 일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일주일 내내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쓰는 삶의 연중무휴가 가능해졌다. 가능이라는 말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파는 것까지 전부 홀로 해내야 하는 내게 퇴근과 휴일이란 개념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전일 매출을 확인하고 밀린 메일에 답을 한다. 때때로 먼저 책을 받아달라는 메일을 보낸다. 늦은 세수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중에 도착하는 연락들 중에는 공간이 좁아 책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 강연을 요청하는 메일도 있다. 거절과 요청의 주체와 객체 자리를 오가며 오전을 보낸다.  

   오후에는 밀린 집안일과 산책을 다녀오는 일 외에는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이때 글은 당신이 상상하는 문학적 글만이 아니다. 운영 중인 수업의 커리큘럼을 수정하거나 수강생들의 원고를 보며 피드백을 전하기 위한 글을 쓰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서는 출간된 책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원고와 각종 지원 사업을 위한 사업 기획서를 쓴다. 나의 오후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노트북 팬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흘러간다. 쓰고 싶은 글보다도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시간이 긴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마음과 뱃속에 허기가 찾아온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나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짧은 초저녁 잠을 자고 일어난다. 잠깐 밖을 나가 담소를 나눌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땐 침대에 누워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있는 힘껏 펴다가 소리 없이 잠드는 게 좋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후반전을 준비할 용의가 생기니까.


   저녁은 아주 성대하지는 못하더라도 정성스럽게 챙겨 먹으려는 편이다. 가능하면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도 간단한 요리와 조리는 넉넉히 해낼 수 있다. 따듯한 음식으로 빈 속을 천천히 채운 후에는 잠시 딴짓을 하며 조금 쉬다가 다시 책상으로 가 앉는다. 직장인 친구들이 퇴근 후에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책 한 권, 혹은 영화 한 편으로 쌓인 피로를 풀듯이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매정한 숫자들과 지나친 업무들과 씨름하느라 쓰지 못했던 원고를 쓰는 시간이다.

   다른 이들이 하얀 와이셔츠와 구두를 벗으며 오늘 영업은 여기까지,라고 외칠 때 나는 요지부동의 자세로 불을 밝힌다. 간접등을 하나 켜 두고 하얀 모니터에 눈을 떼지 않고서 글을 쓴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와 현관을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지켜낼 때 나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서 수많은 이들을 초대한다. 지난 시절의 기억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들과 함부로 품고 있는 소망들을 조심스럽게 써나가며 수많은 이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직 맺지 못한 글에 대한 미련은 뾰족한 수 없이 수면 시간만 앗아간다는 걸 알기에 서둘러 잘 준비를 한다. 잠들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도 마지막 문장에 대한 생각만큼은 조금 열어둔다. 그 작은 틈으로 다음 문장이 새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전일 매출을 확인하고 메일을 보낸다. 이런 날들은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 내내 작은 변주와 함께 이어진다. 쓰는 날들과 쓰기 위해 버티는 날들이 연중무휴 반복된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데 이토록 나는 쓰기만을 위해 살아도 되는 것일까 자문할 때도 있다.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불을 밝힐 간판도 없이 근사한 유니폼도 없는 나의 연중무휴는 과연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허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따금 정말 거짓말 같이 다정한 알은체를 하며 나를 위로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면 다시 기운을 내어 다짐해본다.


   꼭 찾지 않아도, 지나치며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편의점 간판처럼 나도 여기 이곳에 오래 머물러 쓰고 읽히는 삶이 되자고. 이따금 찾아오는 이들에게 안온함을 전해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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