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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r 29. 2016

겨우 엽서 한 장, 오래된 사진 두 장

가랑비 장면집 #scene 5.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언젠가 놓쳐버린>

#scene 5. 겨우 오래된 사진 두장



┃'겨우' 라는 것이

겨우 오래된 사진 두 장, 이라고 시작을 하지만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겨우'라고 시작되는 것들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부어진다는 걸 잘 안다. 지금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요며칠 전에 마켓에 나갈 일이 생겼다. 내 책과 더불어 직접 만든 엽서와 책갈피를 몇 주간 틈틈히 준비해왔다. 책이 나오고 점차 바빠지면서 언제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언니에게 도움을 받아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함께 엽서를 만들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었다.


마켓의 특성상 독립출판의 제작자인 본인이 홀로 참석하게 됨으로, 홀로 자리를 잡은 나는 챙겨온 책들과 책갈피 그리고 엽서들을 자리에 정리해두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유년시절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가 이 엽서를 발견한 건 이 엽서가 그려지고 쓰여진지 2주나 지나서였다. 그 사실이ㅡ '겨우' 라고 할 수 있을 수 있는 엽서 한 장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묶어 두었고 가슴에 울렁임을 가져왔다


그 사이에 한 번 언니는 내게 서운함을 쏟은 적이 있었다. 언제나 서로의 탈출구 혹은 비상구가 되어주던 각별하다면, 둘째가라가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각별했던 우리였다.


그러다 책을 준비하면서, 내면서, 여러 상황들이 생겨나면서 나는 곁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늘 묵묵히 내 등을 밀며 따라 걷던 언니었는데, 그 밤이 내겐 무척 아팠다. 스스로에게도 무척 실망스러웠던 날.


그러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것들을 마주하게 했던 언니가 야속했던, 여전히 어렸던 밤.


그런데 그 밤이, 오기 전에 언니는 내게 가장 따듯한 언어들로 '잘 걷고 있어,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라며 나를 토닥였고 그 밤의 서운함을 지나오고 나서도 여전히 묵묵히 나를 지켜내주고 있었다. 조금 유치한 나라면 그 사이 미움에게 져서는 엽서를 어딘가로 숨겨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버텨, 내게 온 겨우 엽서 한장,은 내 지난 날을 돌아보게 했고 내 유년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늘 한결 같던 곁의 사람들을 잊어선 안돼.' 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 에게서 조금 멀어져 간다고

  느껴졌을 때

엽서에 그려져 있던 나는 아주 어렸던 시절의 모습이지만, 어렴풋이 늘 그 얹저리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장면 속에 함께 놓여졌던 언니가 있었고 누군가 그 날의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더해가고 또 덜어가면서 그때의 기억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그려보고는 했으니까.



엽서를 받아들고는 집에 돌아가서 그때 그 사진 옆에 꼭 두고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또 나를 어떤 생각들로 이끌리게 할 줄도 모르고. 겨우 오래된 사진 하나가.


사진과 엽서를 나란히 두고 보다, 괜히 서글퍼졌다. 이전보다 더 빛바래져가는 어린 시절 속의 내가, 영영 아득히 멀어져 버릴까,  두려웠고.  언제나 '지금, 여기'의 내가 마음에 들어, 라며 자신하던 내가 그 사진 속 어린 아이에게 묘한 질투를 느끼는 낯선 순간도.


빛바랜 사진 속의 언니와 나는 늘 화려한 원피스 차림, 한 여름에도 부츠. 형형색색의 모자들에 둘러싸여있다. 여느 부모님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것들을 입히고 씌워주셨다. 어릴 땐 그게 참 싫었다.


자꾸만 흘러내리던 어깨끈도 성가셨고 유난히 사내애들처럼 개구졌던 나는 원피스만 입으면 왠지 이전과 달리 쑥스러워지고 그랬는데 그게 어색하고 싫었다. 검은 부츠샌들는 그 사이로 빠져나오던 발가락이 미워서, 땀에 미끌어지던 느낌이 싫어서 그렇게 안 신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몇 번의 등교버스를 놓치곤 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모든 것이 그리웠다. 늦은 눈을 뜨고 아무렇게나 집어 입고 나갔다, 또 허겁지겁 돌아와 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한 오늘의 무채색, 그 얼굴이 괜히 서글프게 느껴졌다. 깨어주는 이가 없이 일어나야 하고 입혀주는이가 없이도 입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지금의 내게도 가끔은 그렇게 하나도 모르고, 걱정 없는 떼를 쓰는 아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나 싶었다. 겨우 빛 바랜 사진 하나가 나에게 숨겨졌더 서글픔을 끌어내다니, 괘씸하게 느껴졌을 때




┃여전히 함께라는 이름으로


옆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수줍게 앉아 있던 그날의 또 다른 장면 하나.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세발 자전거 뒤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동생을 태우고는 늠름한 표정으로 있는 아이, 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내 모든 성장과정에서 함께 했던 언니는 내겐 지금까지도 늘 더 작고 더 여리고, 내가 보호해야할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갈등을 원하지 않는 성격의 언니완 달리, 나는 언니가 어디서 조금이라도 분한 일이 생겨서 돌아오면 괜찮다, 는 언니를 뒤로하고는 늘 따져 묻고 주먹을 쥐곤 했다.


그러면 언니는 사람들 앞에선 늘 내편을 들어주면서도 돌아와서는 내게 언니로서 하는 잔소리들을 하고는 했는데 나는 그게 미울 때도 있었고 같은 나이이면서 왜 어른스러운 척이야, 하는 심술도 있었다. 조금 더 자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기울어가고 하면서 3분이라는 시간이 주는 책임감이라는게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렇게 내게 키보드를 두드려 한 글자 한 글자 채워가도록 만든 '겨우' 엽서 한 장만 보아도 그렇고 저 작은 체구로 동생을 태우겠다고 페달을 밟고 선 야무진 표정을 보아도 그렇다.



┃사소한 것들이 내게 주는 것들

겨우 엽서 한 장에서 시작된 감정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움에서 출발해, 어린 나에게서 느껴지는 생경함 그리고 그리움과 서글픔,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늘 함께라는 이름의 존재에게서 느끼는 안도와 위로.


'겨우'라고 시작되는 사소한 것이 내게 주는 의미들을 다시 한 번 느끼는 하루였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을, 언제나 머묾에도 잊고 있었던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꼬옥 잡고 놓치지 말라고 전해주던 그 엽서 한 장이 내게 가진 힘을 나는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조금은 흐려질 때까지도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조금 더 그 손 끝에 힘을 쥐고 놓치지 않기로 다짐한 오늘이니까.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다음 이야기 #scene 6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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