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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r 30. 2016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가랑비장면집 #scene 6.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언젠가 놓쳐버린>

#scene 6.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여전히 멈춰선 걸음들


/문득, 그가 미워졌다. 아니. 사실 그보다도 그를 배웅해주던 숱한 걸음들이 , 그 미소들이 미워졌다.


떠난 건 그였고 남겨진 건 나였다. 물론, 나 역시 이해하고 있다. 떠나는 이들의 설렘 사이로 깊게 베어든 긴장감과 두려움을. 그렇지만, 이제는 멈춰선 걸음에게도 무언가 필요해. 정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무엇이, 멈춰선 걸음들에게도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한산한 시각의 버스정류장에서였다. 바람이 좋아서 늘상 타던 곳을 지나서 몇 정거장을 더 걸어갔었던 어느 가을 밤.


앞서 걷던 연인으로 보이던 남녀도 나와 방향이 같은지, 어쩌다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 걷게 되었다. 가만히 걷다, 앞선 그들이 걸음이 멈춰 섰고 나 역시 걸음을 멈췄다.


몇 정거장을 걸어온 나와 같은 곳을 지나온 그들은 왜 앞선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참견이 들었을 때, '아쉽다. 이제 가야하네.' 라며 남자는 아쉬운 빛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난 속으로 '뭐 또 만나면 되지. 뭐가 그리 아쉽나.' 또 괜한 참견 한마디를 삼켰다. 얼마 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애틋해보이던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밝게 인사를 하고는 통통거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여자는 정류장 쪽 창가가 아닌 반대 쪽 창가에 앉아, 잠깐 고갤 돌려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무언가 열중하는 듯한 모습, 을 나는 그녀의 뒷 자리에서 넘겨보고 있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갤 돌려보았을 때 창밖의 남자는 여전히 그자리에 묶여있었다.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아쉬워보였는지 나는 순간, 내 앞에 여자가 미워져서는 가슴 속에 숱한 참견이 밀려왔다. 그러다 다시금 지난 여름의 한 장면을 꺼내보게 되었다.



┃남겨질 사람들을 돌아봐줘요


언제부턴가 여름은 내게 애증의 계절이 되었다. 겨울에 태어나, 텁텁하게 감싸안는 오후 2시의 바람을 답답해 하기도 하지만 선선하게 내려 앉은 푸른 밤 사이에서 쏟아놓는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였는데.


기약이 있는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기약과 숱한 안녕이 반복되는 계절을 나는 도무지 덤덤히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파리에 가 있는 그는 내게 좋은 친구이지만,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머물고 떠나는 순간의 간격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늘 깊게 남겨지게 했다.


그리고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언제나 짧은 차림으로밖에 마주할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그랬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늦여름의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떠난 것은 그였다.
다시 돌아올 것도 그였다.
남겨질 것은 나였다.

숱한 배웅을 뒤로하고 다시 만나, 라며 웃으며 사라지던 작은 점의 사내의 표정이 어떨지는 제 아무리 친구라지만 알 턱이 없다.


그치만 그 역시, 그가 사라지고 아니- 그만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그대로 남겨진 공간 안에서 얼마간을 또 허탈함에 조용해질 내 하루들을 모른다.



남겨진 자의 입장으로서 이야길 하자면, 같은 헤어짐 혹은 떨어짐 앞에서 쥐어지는 것이라곤 남겨진 여전한 세계. 그리고 남겨진 나.


떠나는 자에게 쥐어지던 따듯한 말마디들, 마음이 담긴 편지조각들, 선물들-, 부디 새로운 곳에 가서도 잊지 말라던 애틋한 약속들. 그 어느 것 하나 남겨진 자의 것이 없다.


이전 것들과 이별해,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을 이의 두려움을 모르지 않는데 그럼에도 늦은 밤, 방에 돌아와 추억할 것들 한아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남겨진 그 약속들, 미소들 그리고 따듯한 무엇들.


매년 같은 계절을 두고 그가 찾아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것이 싫었고 당연한 듯, 많은 사람들의 반김을 받는 웃는 얼굴이 또 배웅을 받던 순진한 등이 미웠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 가만히 고갤 들면 보이는 여자의 등이 꼭 그와 같았다. 고갤 돌아볼 생각도 없이 작은 화면 안으로 누군가와 쉴새 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이어가던 그녀의 손가락을 가만히 조용한 미소로 응시하던 창밖의 남자가 무력해보여서 미웠다.

 그 곁에 내가 서서
뜨거운 계절을 뒤로하고
떠나던 익숙한 등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저 그가 먼저, 나를 돌아봐줬더라면./누군가 그가 아닌, 내게도 따듯한 말마디 남겨줬더라면/남겨질 시간 동안 그 허탈한 마음, 한 번 더 헤아려줬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시, 찾아올 계절을 뜨겁게 반길 수 있었을까.


이름도 성도 모를 두 남녀의 짧은 장면에 마음껏 참견하고 혼자 또 허탈해 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이번 우리의 안녕과 안녕 사이에는 머뭇거리다 남겨질 나를 위한 무엇이 남겨진다면 다음의 우리가 다시 마주하기까지엔 원망이 조금은 작아질 수 있지 않을까.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다음 이야기 #scene 7. 당신의 가난한 행복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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