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랑비메이커 Mar 31. 2016

당신의 가난한 행복을 위하여

가랑비 장면집 #scene 7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언젠가 놓쳐버린>

 #scene 7  당신의 가난한 행복을 위하여



┃ 신호등과 맥주 사이에서


신호등과 맥주, 그것들은 아마도 내게 처음 가난과 행복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했을거다. 아주 어릴 적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겨우 아홉살 정도가 되었을 때의 일이지 않을까.


그날 왜 내게 동전 몇 개가 있었는지, 누구랑 함께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3평 남짓 작은 공간, 그리고 마름침 삼켜가며 보냈던 5분 남짓의 시간.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사탕이 모두 들어있던 신호등 사탕을 내려 놓고 입 안 가득 톡톡 터지는 맥주맛 사탕을 집어들어야 할지. 내겐 어느것도 내려놓기 힘든 선택이었다.

피아노 학원을 가는 길에 신호등 사탕을 사가지고 가면 가는 길에 하나, 피아노 두드리며 하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나. 입안이 심심하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맥주사탕은 당시 내 또래 아이들에게서 유명하던 사탕이었고 별다른 맛은 없었지만 톡톡 쏘면서 침이 고이는게 아주 감칠맛이 나던 사탕이었다. 생각만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이걸 먹어야할지 저걸 먹어야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좁은 슈퍼 코너 사이로 어른들과 아이들이 나를 지나갔고 나는 두가지를 손에 쥐고는 몸을 비켜주고 다시, 또 고민을 했고 또 지나는 사람들을 위해 몸을 좁혔다. 그러다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내게 주인 아저씨께서는 무얼 그렇게 고민하느냐며 둘 다 사면 되지! 하며 웃어보이셨는데 (당시, 아저씬 사탕 하나를 갖고 고민하는 내가 귀여워서 하신 말씀일테지만) 내겐 그게 어린 나이에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내겐 정말 중요한 고민이었는데 슈퍼 아저씨에겐 그저 양자 모두 가능한, 심지어 두개를 한입에 털어 넣을 수 있을 만한 문제 아닌 문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되자, 나를 지나던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 중에서 신호등 사탕과 맥주 사탕을 두고 나처럼 이렇게 긴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덮쳤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작은 손에 쥐어진 동전 몇 개를 보며 '가난이라는게 별개 아닐지도 몰라, 나는 지금 이 작은 것들을 두고 하나를 버리고 선택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인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하나의 정의를 세우게 되었다.


 가난이란 원하는 두가지 중에 한가지를 내려 놓아야 하는 것.






┃나의 행복은 부유하지 않아요


어린 시절의 내가 겨우 몇 백원짜리면 살 수 있는 신호등사탕과 맥주사탕을 두고 고민했던 그 장면이 내게 가르쳐줬던 가난은, 조금 더 자라난 나에게 행복이라는 걸 알려줬다.


내게 행복은 (가난를 가르쳐 줬던 것처럼) 여전히 신호등 사탕과 맥주 사탕, 이것들과 멀지 않다. 이제는 동전 몇 개만으로는 살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 더 줄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슈퍼보다도 더 턱이 높은 곳에서 한참을 망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행복은 부유하기보다는 가난한 것.


어린 날의 내가 슈퍼 안에서 보냈던 몇 분을 뒤로 하고 쥐어든 사탕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ㅡ 두 손 아닌 한 손에 쥐어진 그 달콤한 것을 깨물어 먹지 못하고 설설 녹여먹으면서 입안 가득 오래도록 남아있던 단내의 행복을 기억한다.


어린 날의 가난은 주머니에
달랑 거리던 잔돈 몇 푼으로
다시, 또 내일의 달콤한 걸음들을
인내할 줄을 알았다.



그렇게 기다리며 어느 날엔가는 두 손 가득, 쥐어오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녹여먹었던 그때의 그맛은 다시 오지 않았고 나는 쥐어든 것들을 내려 놓을 줄도 알았다.


내게 행복은 그런 것이다. 양 손 가득이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조금 더 기다리며 입 안 가득 달콤한 상상들을 채워가는 것.


화려하게 꾸며진 꽃바구니와 다발들 사이를 지나와, 밖에 놓여진 꽃송이들의 향기를 맡을 줄 아는 것.


결국 덜어내고 버려지게 될 것들을 한아름 데려와 곤란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언제까지나 남겨질 것들로 만족하는 것.


여전히 가난한 나는 차고 넘치는 것들

앞에서 곤란하다.


내게 행복은 가난해서 기다릴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것.


나는 언제까지나

이 바보 같은 만족을 바꾸고 싶지 않다.


/어디선가 작은 한 조각의 무엇으로도 웃음 짓고 있을 당신의 가난한 행복을 위하여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다음 이야기 #scene 8. 뜨거운 말 한마디



작가의 이전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