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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r 31. 2016

당신의 인디로 머물고 싶어요

가랑비장면집 #scene 9.


가랑비메이커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언젠가 놓쳐버린>

#scene 9. 당신의 인디로 머물고 싶어요



┃인디, 라는 이름




나는 인디를 좋아한다. 인디(inde-), 독립적인 그 모든 것 앞에 붙는 이름.


다시, 나는 독립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인디무비, 인디가수. 독자적으로 창작된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

조금 덜 세련되었을지 몰라도, 조금 덜 완벽할지 몰라도


적어도 가면이라는 것에서 더 멀고 맨 얼굴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어떤 간섭에서 조금 더 멀어지고 내면을 조금 더 들어낼 기회를, 용기를 내었으니까

마주하는 이들에게도 조금 더 솔직하게 음미하고 들어낼 용기를 준다.


내가 어쩌다 두 손을 모아, 독립영화들을 수집하게 되었는지, 인디뮤지션들의 신곡을 기다리며 그들의 공연장 앞에 줄을 서게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유를 더하자면 그누구보다도 멋진 말들을 보탤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인디'라는 이름 앞에서만큼은 조금 덜 거짓되고 싶으니까.




┃당신의 인디, 가랑비



방 안 구석에서 혼자 쓰고 뜯어버리던 노트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나는 아마, 며칠이고 가만히 앉아 휴지 몇 통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글은 밝고 환한 곳이 아닌, 조금은 어둡지만 아늑한 곳에서 시작되었고 누군가에게 만족을 안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안아주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내게 글이라는 것은 가슴 속에 만들어 놓은 작은 방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방이 언제나 어둡고 축축했으므로 누구도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그 비좁은 공간은 조금도 자라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나 하나로만 가득할 줄로, 그렇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열어둔 그 문 틈 사이로 볕이 들었고 그 볕과 함께 빗물은 어느새 새것들을 길러냈다. 작은 싹이 돋았고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았지만 그만의 향을 가진 꽃이 피어났다. 그렇게 방 안에 낯선 걸음들이 채워졌다.   

가랑비메이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마치는 글 일부-


다만, 내 글들은 내가 나다워지기 위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나로서 인정해주고 끌어 안아주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페이지 너머로 다시 마주하게 된 나를 마음껏 읽고 또 울면서 그렇게 나, 라는 사람의 맨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페이지 너머에는 나의 시선만이 있는게 아니었다. 조금씩 걸음이 늘어갔고 머무는 시선들도 다양해졌고 그 깊이와 길이도 서로 제각각이 되어 그만의 의미들을 더해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시선들이 이제는 페이지를 넘어, 우편과 메일을 통해 찾아온다. 시선을 넘겨주고 또 시선을 바라면서 내게 찾아온다.


내가 나를 마주하기 위해, 시작했던 문장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을 만났다고 하며 나를 위로한다.


그러고는 하나 둘씩, 내게 자신의 인디라며 나를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나는 그런 그들에게 약속한다.

여전히 서툴고 어설픈 사람이지만 언제까지나 거짓 없는 이야기들을 써내려가겠다고.


나, 가랑비메이커라는 한 사람의 독립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당신의 인디

당신의 인디이고 싶다/아직 세상 앞에 온전히 제 빛을 내놓지는 못했어도/내 가슴 속에서 온전히 숨 쉬는 사람/홀로 컴컴한 길을 걷고 있을 때/자꾸만 찾게 되는 사람이었으면/모든 것이 시들시들 힘을 잃어갈 때/숨고 싶은 한 구석이었으면/ 남몰래 숨겨 두었다가도/가끔은 덤덤히 꺼내 보이고 싶은 자랑이었으면/그림자가 있어, 빛이 있다는 사실을/보다 아름답게 얘기해주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나는 당신의 인디로 머물고 싶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116p




브런치북프로젝트

가랑비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이제 곧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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