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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y 17. 2016

나를 펼쳐보여요, 당신에게

숨기고 싶던 나를 꺼내보인지 어느덧 200일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당신에게 내 페이지가 닿기까지]

#story 5 그후, 200일

<나를 펼쳐보여요, 당신에게>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단상집 작업과정/ 그 후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하루를 꽉 채워, 작업을 하던 중에


문득 알람이 울렸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자정에 울린 알람은 터무니없게도

기념일 알림이었다.




갑자기, 무슨 기념일이지 싶던 마음이

화면 속 여섯글자를 보자, 문득 뭉클해졌다.



어느 틈에 이렇게 시간이 흘러
네가 내게서 나온지
벌써 200일이 되었나





| 당신에게 나를 펼쳐보여요.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처음 당신에게 나를 펼쳐보이는 날이

가을의 어느 밤이었으면 했다.


헛헛함에 배회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 시각에 또 다른 걸음을 마주하게 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탈고를 먼저 마치고나서도

시월의 마지막 밤까지 출간을 기다렸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
내게 지어졌던 그 가을의 무게를.



가랑비메이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페이지로 남긴단 것은 어쩌면

백마디의 수고를 더는 일은 아닐까.



우리가 언젠가 느린 걸음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지나온 시간들이 뒤죽박죽

뒤섞여버릴 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고 헤어질 수도 있는 당신께 나는 구구절절, 세월을 늘어 놓기보다는 이 책 한 권을 건네주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 당신에게 닿기까지,

그리고 200일 간의 여행


2015년 10월 31일부터

2016년 05월 17일까지


2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여행을 했다.


독립서점 곳곳에 보내진 나의 책들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나의 문장들이 이곳 저곳으로

긴 유랑을 떠났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기 바라며ㅡ


그렇게 떠돌다 보면 언젠가

당신의 시선 안에 고요히 담겨질 것이다.



여행을 떠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문장이란 옷을 입지 못했다면
내 생각들은 부끄러운 알몸으로
언제까지나 내 머릿 속에 꽁꽁 숨어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나를 조금 떼어, 한 권의 책으로 놓여지지 못했더라면 사는 동안
평생을 마주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슬픔을 터놓고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까.


홀홀단신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책들이

불안정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도 그 작은 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열리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메일과 우편 그리고 내 공간 안에 내려진 또 다른 시선들로 돌아와주었다.




| 내가 여전히 나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




글을 쓰기로 결심한 누구에게든
내 몫으로 놓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로망을 너머, 오랜 소망이다.



그때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저 책 한 권을 남기고 싶었다.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없더라도

몇몇의 눈물은 흘릴 줄 아는

열 일곱 살의 내가 채워낸 최초의 페이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지난 새벽, 갑작스러운 알림에

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


언니는 문득, 내 첫 페이지가 담긴
독립잡지 과월호를 꺼내들고는

소리내어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시작된, 벌써 몇 회인지도 모를

낭독회는 나의 어린 페이지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되는

'비를 머금은 노래' 라는 제목의 글을

가만히 듣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펼쳐보이기까지

수개월이 아닌, 수년의 걸음이 있었고

발자국의 크기도, 보폭도 조금은 자랐으나


나는 여전히 비를 좋아하고

스스로 가랑비가 되어 스며들 문장 하나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언제까지나 괴로움으로 펜을 들더라도

편안하고 배부른 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이 스스로가 고고해서가 아니라

이제껏 지켜봐준 이들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




| 이미 나이지만

 결코 내가 아닌 것들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은 나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




결국 이 책 한 권은 나, 이지만
나는 결코 이 책 한 권일 수는 없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는

또 내 몸에서 어떤 부분을 떼어내어

또 다른 나를 대변할 수 있을지.


이미 나이지만,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조각 조각 채워나가다보면


언젠가 당신의 책장에, 머리 맡에

가랑비메이커라는 한 사람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인디, 가랑비

mail : imyourgarang@naver.com

SNS : instagaram @garangbimaker

Blog : http://imyourgarang.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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