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하고 나하고, 우리의 장면

연남동 헬로인디북스, 작은 전시.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by 가랑비메이커

지극히 가랑 비적인 열여덟번째 이야기

<언니하고 나하고, 우리의 장면>




언니하고 나하고


겨우 3분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만났던 언니와 나는 이태껏 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다시 잠을 든다. 단순히 한 침대를 사용한다는 물리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는 평생이라는 이름의 아주 길고 긴 시간을 서로의 시간들을 야금야금 공유하며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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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시간에 걸쳐 이어온 공유는 단순 집에서 일어나는, 주위 반경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점차 각자의 삶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더 멀고 또 깊은 시간들을 조금씩 떼어내어 보여주곤 했다.


KakaoTalk_20160922_214542653.jpg 고등학교 1학년 때 방문에 걸어둔 글처럼 우리는 그렇게 가고 있다.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의 여자가 되면서 '각자의 무엇'들이 우리들에게도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무얼하든, 어딜가든 함께 느끼기를 바라고 서로의 이야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존재라는 이름부터 함께 해온 우리가 좁디 좁던 엄마의 뱃속에서 느꼈던 물리적 심리적 밀착을, 세상 밖에 나왔음에도- 이제는 각자의 줄을 달고 한 걸음씩 내딛고 있음에도 여전히 잊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 팽팽하게 서로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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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마주하고도, 매일 밤 함께 이불 한 장을 두고 옥신각신하다 잠에 들면서도 서로를 찾는다. 혼자 떠나려던 여행은 여차저차하여 결국 둘이 되어, 새벽기차에 올라타 싸우지 않기를 기도하며 시작되었고 슬쩍 가볼까 했던 핫플레이스의 첫 발 역시 결국 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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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행지, 같은 음식, 같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우리이지만, 같은 시간들을 지나와 뻔히 다 안다는 우리이지만 대화가 끊이지 않고 감정선이 구불구불 소용돌이 치는 이유는 각자의 기록들이 언제나 서로 다르게 남겨진다는 사실이다.



단발머리의 나,
긴 생머리의 언니

무채색을 좋아하는 나,
밝은 색을 좋아하는 언니

이야기를 쓰는 나,
인물을 연기하는 언니



한 뱃속에서 열달을 꼬박 함께 머무르다 한 날 한 시에 세상에 나와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부모님께 길러진 우리지만, 모두가 닮았다며 입을 모으고 시선을 모으는 우리지만 각자의 색이 분명하고 섞일 수 없는 부분이 있는 우리였다. 그렇기에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기록이 즐겼고 그것들을 하나, 둘씩 공유하는 것들이 좋았다.


그렇게 가까운 우리였으나, 분명한 개성의 우리가 무언가 하나의 일을 함께 하려고 하면 늘 트러블이 있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언성이 높아졌고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작년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를 함께 만들고 나오는 길에서 우리는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내년 케이크는 각자 하나씩!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라며 덜컹거리는 상자를 들고는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던 우리가, 작은 전시를 함께 하게 되다니 설렘과 함께 작은 걱정이 자라났다.





우리가 하나의 장면이 되어



먼저 전시를 제안한 것은 나였다. 독립작가로 활동하면서 문장을 짓기도 하지만 (펜으로 종이 위에) 쓰는 일도 좋아하는 나기에, 책을 입점 시켜둔 연남동의 헬로인디북스에서 작은 전시 작가에 대한 신청을 받는다는 전체 메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 언니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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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연기를 전공으로 했고 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그림이었다. 카페에서건, 작은 방 책상 앞에서건 몇 시간이고 고갤 파묻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림에 더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 내가 책을 내고 플리마켓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책갈피나 엽서 위에 붓이나 펜으로 문장을 쓰고 꽃잎 몇 개를 붙이는 것이 고작이었던 내 옆에서 언니는 조용히 작업메이트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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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그렇게 얼굴 없는 제작자가 되어 '가랑비메이커'의 숨은 히로인으로 활동하던 중 나의 제안에 '고아라'라는 이름으로 함께 '가랑비메이커X고아라'로서 팀을 이루고 마켓을 나선 적이 있다. 결과야 물론, 배로 좋았다. 닮은 외모도 한 몫했지만 언니의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혼자 나가서 지켜야 했을 시간들이 함께여서 쓸쓸하지 않았고 좋아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나 대견함 같은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쯤되면 함께 해온 작업이
즐거웠고 결과도 좋았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하겠지만은 전시는 다른 문제였다.
작은 공간에 하나의 장면이 되는 것


하나의 주제에 통일된 분위기를 가지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함께 하자고 제안한 사람으로서 언니의 의견에 귀기울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라는 게 생긴 것 같았고 동시에 그럼에도 하고 싶은 주제가 분명히 있었다. 그림에 있어서는 언니 역시 자신의 색이 있기에 어떻게 해야 서로 좋은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 끝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는 그저, '가랑비메이커' 라는 이름에 함께 가는 마음으로 할테니 전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하며 따르겠다고 해주었고 덕분에 우리의 전시는 (내가 원하던)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이라는 주제를 두고 차차 진행이 되었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연남동 헬로인디북스 2016/09/19-10/02



DSC07645.JPG 전시주제, 작가소개


나는 언제나 결코 대단하지 않은 순간들이 결국, 커다란 파도를 데려온다고 믿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들만 돌이켜 봐도 그랬다. 내 삶이라는 서사는 내가 쓰고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에 다만, 그 복선 같은 작은 찰나들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명 그 자체만으로 이미 내게 어떠한 의미들이 되어준 순간들이 존재한다고.



DSC07628.JPG 전시지들


돌이켜 보면 언니하고, 나하고의 기록도 그랬다. 서로의 평생의 시간을 함께 겪어오면서 그 당시엔 그리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말들에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졌고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대화 속에서 세세하게, 마치 당시의 냄새마저 느껴지는 듯이 가슴에 새겨졌음을 깨닫고는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전시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혹은 우리의 시간 속에서 작지만 길게 여운이 남겨졌던 장면들. 말그대로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렸던, 그 사소한 장면들을 다시 불러와 기록하기로 했다. 각자의 방법대로. 나는 역시 펜을 들었고 종이를 이어 붙였고, 언니는 색연필과 붓을 들어 그림을 새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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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적은 문장, 우리가 그린 그림
우리가 찍은 혹은 찍힌 사진.
우리가 머문 어느 틈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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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의 회의와 작업을 통해 전시글과 그림들이 나왔고, 다시 설치를 하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1.5mX1.2m에 새겨진 우리의 기록들에 고작, 이 작은 공간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평생, 이라는
시간의 한 조각이고
'각자의 우리'가 만들어낸
최초의 하나의 장면이이다.


저 조각들을 덧붙이고 돌아온지 고작, 3일. 그런데도 벌써 우리의 대단한 무엇이라도 두고온 것처럼 자꾸만 눈에 밟혀 우리는 다시, 돌아오는 주말에 둘의 걸음으로 그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때 그곳에서의 우리는 각자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어떤 새로운 기록들이 쌓여갈 수 있을까.







1. 가랑비메이커X고아라 전시 안내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연남동 헬로인디북스 작은 벽 공간

2016/09/19 - 10/02


2. 가랑비메이커X고아라 마켓 안내

예술소소, 세종문화회관 앞뜰

2016/10/01(토), 11/05(토) 양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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