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폐달을 밟을 때마다, 내게 다가오던 감정은 변했어도
지극히 가랑비적인 스물 네 번째 이야기
<가을하늘 아래서, 스무살의 나를 만나는 것.>
얼마전, 편지를 썼다. 언제나 그랬듯 수신자를 정해두고 쓴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탓에 익숙하게 엽서 몇 장을 꺼내 머리보다는 손에 이끌리어 두서 없는 이야기를 적어갔고 그 이야기들은 얼마전 해변에서 있었던 북토크에 도움을 줬던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그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환절기에 대한 것이었다. 계절이 다른 계절로 넘어가는 시기,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길어진 소매와 괜시리 선선한 바람에 일렁이는 마음들. 그 마음이 이렇게 빨리 닿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표를 붙여 우편을 보내고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바람은 한결 더 가볍고 청량해져 있었다.
"이런 환절기엔 참 우스운 생각이 들어요. 그 지겹도록 떠나고 싶던 이 무더운 계절이 이제 떠나버리다니 아쉬워지는 것 말이에요. 이제 달력을 마저 채워내고 새로운 장을 만나게 될 즈음이면, 한여름의 농담들도 모두 과거가 되어서는- 다시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세번의 층계를 넘어서고 나서야만 다시 만날 수 있겠죠. "
무더웠던 여름, 유난히도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어느새 티 없이 푸른 하늘이 되어 있었다. 그 가을 하늘이 우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여름 방학, 내게도 휴식이 되었던 그 한달 남짓의 시간 가운데 조금 헐렁해진 몸과 마음을 이제는 다시금 단단히 다잡아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
그럼에도- 미팅과 오디션, 촬영이 없는 날이면 사진과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언니의 들뜬 목소리에 밝은 마음으로 화답하지는 못했던 건, 이른 새벽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탓에 조금 피로해졌던 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 공원을 구석구석 돌면서 청량한 가을하늘 아래서 만끽하는 여유로운 오후가 호사스러워질 때쯤, 우리는 잔디밭 앞에 자전거를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언니가 주섬주섬 꺼내든 건 내 책이었다.
언제나 간절했던 한 권의 책이지만, 쓰는 과정 가운데서 많은 것을 쏟아냈기 때문인지 늘 캄캄한 방 한 켠이 아니면,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가 아니면 펼쳐보기 힘든 이야기들을 언니는 언제나 밝고 환한 낮에 들춰준다.
잠잠히 페이지를 넘겨내는 언니에게서 책을 잠시 뺏어들어 몇 페이지를 넘기며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 이 이야기들을 쓰기 위해 지났던 계절들과 몇 번의 새벽이 아주 가깝고도 때론 아득하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 속으로 낳은 이야기들을 조금 더 멀리 두고서 바라보는 일은 이렇게 조금씩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몇 페이지를 조금 더 읽어가다가, 괜한 기억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책을 덮어야 했던 건 페이지 속에 자리한 이야기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갤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자전거 때문이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내가 걸어가는 것보다 나를 훨씬 더 멀리, 가볍게 데려다주던 예쁜 초록색의 대여 자전거. 자전거를 대여하던 그 순간까지도 "너 혼자서도 자전거 잘 탈 수 있지?" 라고 거듭 묻던 언니에게, 스무살 때 이후로 자전거를 잘 타지 않았던 나는 대답했다. "기억 안나? 나 스무살 때 매일 자전거 탔잖아."
대학에 떨어져 캄캄한 시간을 보냈던 나의 스무살. 좋은 걸 해주려던 아빠에게 나는 낡은 중고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던 나는 당시 누구도 내게 지어주지 않던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모든 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던 스무살이었다.
학원도, 과외도 됐다며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의 오래된 독서실을 향하여 폐달을 밟던 나의 새벽은 모두 나의 의지였다. 캄캄한 독서실 안, 작은 칸막이 책상 커튼 속에서 매일 같은 화면을 바라보던 내가 몸을 활짝 펼 수 있던 건 집으로 돌아가는 깜깜한 밤이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종아리에 기름이 묻어나던 그 낡은 자전거를 타며 달렸던 내가 맞았던 선선한 새벽 바람.
그 스무살의 가을이 온종일 겹쳐 오던 이른 가을이었다. 곁에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낸 두번째 책이 놓여 있다하여도 나는 여전히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에 올라타 폐달을 밟았고, 이제는 어딘가에 머물러도 좋을 어른이라는 이름이 내 몫으로 놓였음에도 여전히 머물지 못한 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달려온 내 이십대 중반,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막연한 불안으로 가득했던 스무살의 내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서, 스무살의 나를 만나는 것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띠링띠링, 여기로 와.
그럼에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는 내가 밟는 이 폐달이, 불안함이 아닌 설렘과 기대로 향해가고 있는 것은- 그 스무살의 낡은 자전거가 홀로 달리던 길에서, 이제는 곁에서 함께 힘차게 폐달을 밟으며 또 하나의 길을 만들기 위해 끊임 없는 도전 중에 있는 언니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절실했고 치열했다. 그리고 여전히, 이불 밖에서 꿈을 만나려고 만지려고 과정 중에 놓여 있지만 그게 그대로, 또 새로운 결과들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새 길을 만들어 나갈거다.
이제 내겐 낡은 중고자전거도, 반납해버린 초록색의 새 자전거도 없다. 그럼에도 언제든 무엇이든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의지와 다리가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새벽의 공기가 나를 다시 또 어디론가 인도해간다. 조금 더 일찍 이불을 헤치고 일어나, 이 공기를 만끽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졸린 눈을 비비고 밖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언제 다시 마주치게 될지 모를 스무살의 나를 본다면, 품 안 가득 안아주며 말할 것이다. 조금만 더 나를 지켜봐줘, 나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