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히스. 모두가 사랑했던 그 이름

<아이앰히스레저> 끝내 잊지 못할 단 한 번의 삶, 불꽃 같던 생애를.

by 가랑비메이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 사이]

#movie 8. <아이앰히스레저>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아이 앰 히스레저 (2017)

I Am Heath Ledger, 2017


줄거리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전하는 처음이자 다시 없을 청춘레터. 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도전과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제가 남긴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당신과 질문하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히스 레저가 청춘에게


히스 레저가 세상의 모든 히스 레저에게

Hello, Again. 청춘.


다큐멘터리 캐나다 91분 2017/10/19 개봉





모두가 사랑했던 이름

히스, 그의 미소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 , 셀프캠 속 히스.



히스레저 Heath Ledger.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아니 잊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의 환한 미소를 그리워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 시사회 초대 메일을 열고 나서는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곧장 떠올린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내가 기억하는 히스의 첫 모습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화려한 외모보다도 묵직한 무언가가 울리는 단단한 모습의 히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혹은 가장 강렬한 모습은 붉은 화장을 뒤집어 쓴 조커, 캄캄하고 축축한 분위기의 한 단면이지만 그가 28세 라는 찬란한 나이로 삶을 마치기까지의 모습은 사진 속 모습처럼 밝다. 찬란하고 건강한 에너지로 반짝거리는 삶이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잖아요.
지구가 어떤 운동을 멈춘 것만 같아요.
히스가 이제는 없는 사람이라는 게...

그리고 그 삶, 이 사라진 지금. 단 한 사람의 부재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의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히스를 사랑했던 영화인과 음악인, 그리고 그의 절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그의 삶을 만날 수 있다.






히스의 모든 기록, 모든 예술



히스의 모습은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였어요.
카메라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히스는 카메라 속에서 주어진 배역에 대한 한계 없이 자유로운 표현을 할 줄 아는 뛰어난 배우였지만 자신만의 기록을 위해 카메라 뒤에서 여러 장면을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예술가였다. 그가 사랑했던 건 그저 스쳐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찰라의 순간 마저도 붙잡아둘 모든 형태의 기록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사랑했고, 음악을 사랑했고 그 모든 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품는 예술가였다.




영화 속 히스의 모습은 그가 직접 담아낸 흐린 영상 너머의 낮고 고요한 저음의 이야기들과 그의 일상을 담아낸 삶의 기록들로 나타난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기타를 잡고 카메라를 잡고 어딘가로 정처 없이 떠나는 그. 매순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붙잡아 두고자 했던 그의 (필사적으로도 보이던) 예술.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짧았던 삶에 대한 기록이 되어, 우리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앵글 밖에서의) 그의 삶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웠는지를. 그러니 그 그리움이 무게를 기꺼이 견뎌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젊고 탄력적인 청년의 모습, 말수가 적지만 누구보다도 진실된 카우보이의 모습, 늠름한 기사 그리고 너무도 강렬했던 조커의 모습까지. 그는 삶의 전반에 걸쳐 드러냈던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주어진 배역에도 자신만의 호흡을 불어 넣을 줄 아는 배우였다. 비록 28세의 짧은 생애였으나, 누구보다도 도전적인 배역들에 담대히 도전했고 그런 모습에 영화인들은 물론, 대중들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이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는 히스의 죽음 같은 경우를 두고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했다." 라고 이야기 한다고. 그만큼 히스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을 가질 수 없을 거다.




히스레저, 그가 남겨둔 것들


히스레저 1979년 4월 4일, 오스트레일리아 - 2008년 1월 22일


그의 프로필에 남겨진 2008년의 어느 겨울, 더는 흘러갈 수 없는 그의 시간이 여전히 먹먹했지만 영화가 막이 내리고 다시 캄캄캄한 정적과 마주했을 때 다시 안녕, 히스- 하고 그의 찬란한 시간들 속의 그에게 인사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다.


글쎄요. 생각 안해봤어요.
아주 지루한 영화가 될 것 같은데요?
아무도 안 볼 것 같아요. (웃음)



"당신의 삶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 것 같나요?" 라는 물음에 히스는 말했다. 지루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안다. 너무나 짧은 러닝타임 같은 그의 인생 가운데 얼마나 많은 장르가 걸쳐져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 가운데 그가 해낸 다양한 몫의 삶, 그리고 그저 히스 그자체로의 생이 얼마나 많은 걸 남겨두고 갔는지를.





누구보다도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했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람을 사랑했던 그가 걸어와준 그 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가 떠났어도, 그가 걸어온 걸음마다의 자리엔 언제까지나 숱한 웃음과 눈물이 오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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