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세상을 산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지극히 가랑비적인 이야기]
#story 2 <깨끗한 내 두 손만 바라봐서 죄송합니다>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세상은 시끄럽다.
다만, 들으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세상은 어지럽다.
다만, 바로 보려는 이들에게는
새들도 세상을 뜬다.
언제 다시 돌아올런지는 모른다.
어릴 적에 새들의 비행은
소망, 성취의 이미지로만 느껴지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이제 그들의 비행은
그들에게는 불가피해져버린 도피가 아닐까 하고
가만히 그들을 올려다보게 되던 시간들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기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기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처음, 고등학교 문학시간 때 이 시를 만났던
그 시절의 나는 이 세상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앳된 얼굴로 피켓을 들고 교실을 나선 아이들에겐
뉴스 한 켠도 주어지지 않고 있는 세상.
대학에 사복경찰이 피켓을 들고 선 여대성들의
입을 막고 그 입을 막던 손을 막는 것들은 없다.
그 아이들은 알고 있을 것 같다.
문학시간에서 배우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 참 전에, 이제는 나이가 든 시인이 썼던 이 시의 의미를.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아니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종이와 펜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우리가 그렇게 다치는 순간들은
기껏해야 종이에 베이는 순간들.
이제와 모두가 국기를 들고 봉기하라는게 아니다.
저 짤린 두 마디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어째서 저 손이
한 번쯤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저 사진을 보고 내가 느꼈던 것은 자기 반성이었다.
그리고 세상과 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오래된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사무치는 요즘.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세계가 그 이면의 세계들과 무관하다고 믿으며 근본과 뿌리를 흔드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당장의 오늘도 급급한데, 하며 등을 돌린다.
우리는 오래된 것들을 지켜내기엔, 그 위에 먼지를 털어내고 얼룩들을 지워내기엔 너무나 깨끗한, 그 두 손을 뻗치기를 주저한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깨끗한 내 두 손만 바라보는 것.
고작 편한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시와 이미지(첫번째를 제외한)는 네이버 출처.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