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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r 24. 2018

오롯이 내가 전하는 내 삶, 과 책

가랑비메이커 독립출판 신간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출간회


가랑비 메이커 작업일지 / 당신에게 내 페이지가 닿기까지 / 스물네 번째 이야기

세 번째 책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출간 기념회 후기





사라져 버렸으면 했던

아침이었어요


전날, 아니 익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출간회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신간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는 두 번째 책과 맞물려서 집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실상 아주 오래된 글부터 최근이라 하면 탈고가 되던 2월 말에 쓰여진 글까지, 아주 긴 세월을 먹으며 엮어졌다.


당시 책을 준비하면서 더 분주할 수밖에 없었던 건 12월부터 1월, 2월까지 계속해서 짐을 싸고 푸는 여행의 과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원고는 눈에 익을대로 익은 것 같다 싶으면, 다른 기후 다른 언어가 가득한 공간에서 아주 새로운 느낌을 다가왔다.


어찌됐든, 원고 집필기도 길었고 후원을 받는 기간 또한 길었기 때문에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 약속한 후원감사 출간회가 다가왔을 때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영영 나중일 줄로만 알았으므로.






겨우 붙였던 눈을 너덧 시간 후에 떠서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출간회였기에 참석 후원 독자분들을 위한 리워드를 가져가야 했다. 이때 나는 "이번 출간회 만큼은 내 힘으로 해보고 싶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아야 겠다." 라고 생각했던 나를 정말, 말렸어야 했다고 느꼈다.


출판사가 있는 작가들의 출간회는 모든 준비를 출판사에서 대행해 주지만 내게는 대행, 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다. 책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 그 이후, 출간회 혹은 다양한 마케팅 활동- 모든 것들이 스스로 독행해내야 하는 것들이다. 때문에 곁에는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자매, 작가 동료 혹은 지인들.





그런데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도 아니었고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출간이었으니 이제는 혼자서 무얼 벌여보는 것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으로.


그 막연함에 나는 혼자 캐리어를 끌고 낑낑 대며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버스 2번 지하철 2번의 환승을 지나야 했다. 애써 찾아 신은 노란 구두는 거뭇거뭇 발자국을 입게 됐고.






겨우 도착한 출간회를 하게 될 공간, 책방에서 (사장님이 지방에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던 중이었음으로) 직원 한 분과 나는 겨우 한시간 남짓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테이블을 옮기고 의자를 세팅하고 준비한 리워드를 정리하며 진땀을 뺐다.


지인들이 미리 와서 정리를 도우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기꺼이 희생해주던 손길이 얼마나 든든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괜한 고집으로 일찍 와서 돕겠다는 언니의 손길을 뿌리쳤던 조금 전의 내가 이해되지 않았던 그날의 오후.






테이블과 의자, 스크린 그리고 리워드.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프로젝트 빔의 사용법이 미숙해서 모두가 착석한 뒤에도 5-10분을 허둥지둥 되게 될 것을 전혀 몰랐다.


약속된 다섯시가 되자 정말 모든 인원이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북토크를 했었지만 이렇게 모든 자리가 정시에 채워지는 일은 드문 일이었고 미리 시간 맞춰 와준 걸음들에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출간회는 더디게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랑비메이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랑비메이커입니다." 라고 마이크너머로 말을 전하며 하얘졌던 머릿속이 다시 정돈되는 것 같았다. 조금 상기된 나와 눈을 맞추며 응원의 신호를 보내주는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모든 게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거짓말 같은 에너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시작할 수 있었다. 오롯이 내가 전하는 나의 삶, 나의 책 이야기.





자료를 준비해서 진행하게 된 토크는 이번 출간회가 처음이었다. 세 번째 책이었고 이미 서너차례 해왔던 북토크였으나 이번 만큼은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가랑비메이커, 라는 사람에 대해 A-Z까지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문장과장면들> 이라는 작업공간에 대한 이야기,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와 책을 펴게 된 이야기. 이야기를 하면서 진심으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자들을 사이사이 잘 배치했기 때문인지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이 모두 잘 보였다. 그게 처음에는 목소리를 떨리게 했지만 이내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작은 농담에도 함께 크게 웃으며 그 누구도 다른 곳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말했던 "허공에 흩어질 소리를 할 바엔 들을 귀가 있는 이들 앞에서,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는 하얀 종이 위에서 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라는 고백이 더욱 깊게 닿는 순간이었다.





출간회에서는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 하나 함께 읽고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안내하는 것에 따라 함께 고개를 숙이고 페이지를 넘기고 눈으로 따라와주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울컥해졌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내 원고에 힘을 실어 후원을 해주고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나왔고, 그 책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함께 읽어주고 있다. 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참 포근한 장면이었다.





함께 페이지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눈시울을 붉히며 이들과 나는 분명 하나 이상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됐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봄이 오는 날에, 주말에 함께 자리에 모여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순 없을 테니까.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하면서도 내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었다. 그저 지나가줬으면 했던 시간이 이제는 영영 지속되기를 바라는 순간이 된 거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서는 신간에 사인을 나누며 함께 이야기하는 짧은 시간을 가졌다. 사실 내 욕심으로 준비한 시간이기도 했다. (언젠가 유명 작가를 보기 위해 들렀던 출간회에서 일부 미리 사인된 걸 확인하고는 그와 얼마 대화를 나눌 수 없음에 아쉬웠던 적이 있어서, 후원자들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마련을 했으나)


종종 마켓이나 북토크를 하고 돌아올 때면 메일이나 메세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은 아쉬움이 아닌 잠깐 나눈 대화들에 대한 피드백, 혹은 덧한 이야기들을 받게 되었고 나는 한층 더 가까워졌고 그 이름들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정말 고마운 시간이었다.


나눈 이야기 중에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건, "3년 전에 처음 책이 나오고 얼마 안되서 했던 첫 마켓에서 사인을 받아갔었다. 혹시 기억하느냐." 라는 이야기였다. 나름대로 기억을 잘 한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예상치 못하게 훅 들어온 질문이었다. 3년 전이라니, 기억의 유무를 떠나 고마움이 덮쳐왔다.






"이렇게 계속 책을 내실 줄 몰랐어요"

"네, 저도 몰랐네요..!"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정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나도 몰랐다. 학기 중에 냈던 나의 첫 책이, 다른 길들의 당위를 밀어내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가게 할 줄은. 그리고 이렇게 오래 전에 마주했던 누군가를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전해주신 선물들과 쪽지들을 보며 가만히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이 행복의 순간을 아주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날은 독자들과 만나는 출간회이기도 했지만,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들 앞에 가랑비메이커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서는 날이었다. 낯설 수 있는 나의 모습을 가랑비메이커로 받아드리고 내가 가장 기쁜 순간에 함께 해준 이들에게 어떻게 갚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더불어 나의 처음과 끝을 모두 가랑비메이커로 기억해주며 읽어내줄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갚아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언제나 같다.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그렇게 천천히 밟아나가며 글을 써야지,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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