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표면의 흐름 밑에

무거운 것에 길들여져 있다. 어둡고 침침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by 일뤼미나시옹




금이 간 수박 반쪽이 과즙을 흘리고 있다. 벌건 물이 하수구 구멍 쪽으로 흐르고 있다. 벌겋게 익은 속을 쩍 열어놓은 수박이 개미떼를 부르고 있다. 생선가게 파리 떼를 부르고 있다. 파리채에 쫓겨 다니지 말고 자기를 뜯어 먹으라고 단내를 풍기고 있다. 곪기 전에, 냄새를 풍겨야 한다. 진열대 뒤로 밀려난 수박은 멀리 있는 벌을 부르고 있다. 텔레파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보이지 않는 나비를 부르고 있다. 진열대에 진열되기도 전에 깨져버린 수박은, 숟가락으로 파 먹히다 버려진 반쪽 수박은 뭍에 오른 쪽배처럼 쓸쓸히 물을 흘리고 있다. 더러운 길바닥에서, 더러운 취급 받기 전에, 희미한 냄새를 멀리 보내야 한다. 번식할 힘이 필요한 날 것들을 위하여, 곪은 것을 즐겨 찾는 혓바닥을 위하여 반쪽 수박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상점 주인의 발길에 채여 빙그르 몇 바퀴 돌다 평상 밑으로 사라지기 전에 저를 먹어주는 날 것들을 부르고 있다. 뒤로 밀려난 반쪽 수박. 마치 끝까지 인생 안 풀리는 소설 속 등장인물 같은 금간 수박. ( Memories / Chet Baker/ Live In Tokyo)



사흘째 저러고 있다. 개입한 할인점 앞에서 전신을 허물었다가 일으켜 세우고 다시 허물어지는 춤. 아이들이 사지를 휘저으며 흉내 냈다. 어른들은 춤보다는 짧은 치마에 시선을 고정했다. 바람이 끊임없이 허물어지는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냥 이대로 푹 주저앉으면 안 되는가. 허물어지려는 힘도 의지와 관련된다. 바람인형. 이 춤의 목적은 거리를 굴복시키는 것. 거리의 시선을 할인점으로 끌어들이는 것. 길고 허약한 두 팔은 허공을 한껏 품었다 풀어주고 또 품는다. 내레이터의 춤은 금방 싫증이 났다. 거리는 애써 외면하기 시작한다. 나뭇잎이 허공을 까맣게 메운다. 초점 없는 시선의 춤은 해질녘까지 계속 되었다. 초점 없는 시선이 회복되려면 춤이 멎어야 한다. 춤이 끝나고도 한참 기다려야 한다. 상점마다 쏟아낸 불빛이 거리로 쏟아진다. 바람이 모두 빠져 바람인형은 벗겨놓은 소가죽처럼 포개져 있다. (Andrzej Jagodzinski Trio/ Chopin / Polonia)



유로피언 재즈 트리오의 앨범 『Memories of Liverpool』은 비틀즈 음악을 재즈로 변주한 곡들이다. 비틀즈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곡들 「Yesterday」, 「Let It Be」, 「Because」등 주옥같은 곡들이 재즈로 변주되어 있다. 재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음반이라 할 수 있다. 비틀즈의 곡들을 어떻게 재즈로 변주했을까. 그리고 재즈로 변주되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떨까. 유로피언 재즈 트리오는 대중에게 친숙한 재즈를 연주한다.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재즈를 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특히 「Because」를 듣고 있노라면, 어서 빨리 늙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난다. 더는 이 세상에 저항할 힘도 없고, 더는 욕망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마지막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책이나 읽고 싶은 것뿐. 혹은 마지막까지 청각이 살아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한 곡 들으면서 죽어버리는 그런 바람이나 있을까. 언젠가 늙고 병들어 몸속에 암세포가 퍼지는 때. 그 때에도 난 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름다운 한 곡의 음악을 받아들이듯이 죽음을 그렇게 맞을 수 있을까. 내가 죽는 것을 아무도 못 보게 할 수 있을까. ( Memories of Liverpool/ European Jazz Trio/ Only Misic)



맑은 가을 햇살이 들판에 쏟아지는 것처럼 라디오에서 보사노바 음악이 들린다. 간드러지고 걱정이 없고, 하늘거리는 머플러 같은 리듬 보사노바. 내 귀에 따뜻하고 풍부한 가을 햇살 같이 들리는 보사노바. 하지만 나는 보사노바를 싫어한다. 오래전부터 보사노바에 대해 정을 붙여 보고자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말걸 수 없는 불편한 사람처럼. 보사노바는 내게 너무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다. 보사노바 리듬에는 걱정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보사노바는 즐거움과 발랄함만 가득하고 싱싱하다. 보사노바에는 맑은 햇살만 가득하다. 보사노바는 그러므로 유희를 아는 이들의 음악이다. 마음이 싱싱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나는 보사노바를 꺼려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보사노바는 오히려 나를 거북하게 한다. 나는 적극적으로 보사노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차라리 즐길 줄 모른다. 나는 너무 차분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무거운 것에 길들여져 있다. 어둡고 침침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가볍고 경쾌한 것을 진정으로 즐길 줄 모르면서, 가볍고 경쾌한 것에 대해 경박하다고 치부했다. 나는 보사노바의 세계에는 절대로 여행을 할 수 없다. 보사노바는 잘 마른 빨래의 감촉이다. 빨랫줄에 펄럭거리는 옷감들이다. 잘 마른 옷감을 만질 때의 느낌 같은 보사노바. 하지만 왜 나는 보사노바를 긍정하지 못할까. 보사노바는 여유와 낭만이 있어야 한다. 즉 내 마음이 여유와 낭만이 스며들게 빈틈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사노바는 잘 마른, 감촉이 좋은 순면 티셔츠 같이 나와 가까워 질 수 있다.

소풍가기 전날의 기쁨에 들뜬 소녀의 마음이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걸어오면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허리가 고꾸라지도록 웃음을 틀어막고 걸어오고 있다. 저 혼자 킥킥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웃음이 바깥으로 터져 나가지 않게 꽉 틀어막고 있다. 얼굴에 붉은 혈기가 오르도록 힘껏 웃음을 틀어막고 있다. 궁금하다. 나도 한때 저런 웃음을 참고 거리에서 허리가 꺾어진 적 있었지. 내 앞을 지나간 아이의 손을 살짝 젖히면 우울한 상점들의 거리에 보사노바 리듬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보사노바는 만화적인 환상의 세계이며, 걱정과 고민을 던져버려야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 시절이지만, 가을 어느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보사노바리듬처럼 우리 스스로를, 삶의 감옥에서 탈옥시키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보사노바 음악 몇 곡 들으며, 생의 일부를 긍정해 보는 것 어떨까. (Sweet Bossa/Myrra/ Arietta Discs)



사랑이 싹틀 때

-이상은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눈썹을 길게 그렸지요.


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니는 게 좋았지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은갑(銀甲)을 손에서 빼지 않았죠.

열네 살 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요.

열다섯 살 때

봄이 까닭없이 슬펐어요.

그래서 그넷줄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지요.

( Raccoto/ Stefano Battaglia/ ECM)


저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나 파리가 윙윙대는 소리, 온갖 대장장이의 똑딱거리는 소리, 글을 읽는 선비들이 개구리처럼 개골개골 글 읽는 소리 등, 세상 모든 소리 치고 밥을 빌어 먹는 것과 다른 것이 있는가? 그러니 내 거문과 자네의 비렁뱅이 거문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나? 단지 나는 늙은 어머님이 계시니, 내가 거문고를 배우면서 거문고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고서 어찌 어머님을 섬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네. 그러니 내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라고 해서 어찌 저 비렁뱅이 거문고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순박한 그 아름다움을 따라 가겠는가? 뿐만 아니라 내 거문고와 자네의 그 비렁뱅이 거문고는 재료가 다 같네 ……처음 내가 거문고를 배울 때 3년 만에 기초가 이루어졌으나, 다섯 손가락에 못이 박히고 기술이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진보할수록 보수가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야. 이제 자네 비렁뱅이 거문고는 깨어진 물건으로서, 그것을 얻어 이제 몇 달 동안 연습을 하면 듣는 사람이 벌써 어깨를 비벼대며 몰려들 거야. 그러나 그뿐인가. 한 곡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그 뒤를 따르는 자가 몇 십 명이요, 하루동안 얻은 것을 헤아리면 곡식은 말이나 되고 돈은 한 움큼에 차곤 할 것일세. 이것은 곧 알아 주는 자가 많은 까닭이야. 그런데 지금 유우춘의 거문고는 나라 안 사람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그것은 유우춘의 이름을 듣고 아는 것일 뿐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유득공, 「유우춘전」(Ephemera/ Pepper Adams/ Spotite)


NHOP(Niels Henning Orsted Pedersen)의 베이스 질감은 언제 들어도 중회색이다. 화려한 듯 하지만 우울이 배어 있다. 비상과 추락이 공존한다. 마치 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에는 이파리 떨어뜨리는 나무가 있듯이, 피아노에 플로니스 니코 버닝크와의 라이브 연주 앨범 『Breaking』에는 친숙한 곡들이 많다. 한가닥한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연주하는 곡들이라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가 있다. 첫 속 「All The Thing You Are」에서부터 「Autumn Leaves」까지 어느 한 곡 소홀함이 없다. 특히나 베이스 연주로 스탠더드 곡들의 아우라를 느낀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닐스 헤닝 외스테스 페드센의 베이스는 황홀과 아련함, 깊은 인식의 장을 펼쳐 보여준다. 나는 내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이들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너무 좋아서, 그래, 그래 너무 좋아서 함께 듣고 싶은 것이다. 너무 좋아서 함께 인식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좋아서 함께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Stella By Starlight」 에서 피아노의 여성스러움과 연약함 그리고 화려함과 베이스의 부드러우면서도 무거운 어법 「Samba Petite」의 도입부에서 베이스의 우울은 고대의 사랑시를 읊는 듯하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뭐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본다. 그리고 「Alone Together」가 연주된다. 이유가 없다. 무조건 좋다. 앞니 하나가 빠져 오히려 인상이 부드러워진 얼굴 같다. 아 그리고 마침내 「Autumn Leaves」


크리스천 맥브라이드의 『Family Affair』는 걸팡지게 한 바탕 놀아보는 음반이다. 웃옷도 벗어버리고 허리띠도 풀어놓고, 옆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염려도 없이 한번 놀아보는 음반이다. 야단스럽고 부산하다. 이 앨범의 백미는 단연 맥브라이드의 베이스다. 그의 베이스는 진부하지 않다. 유머가 가득하다. 펑키하면서도 재즈 본연의 정체성은 훼손하지 않았다. 돼지를 잡고 막걸리를 돌리며 동네잔치가 있었던 유년시절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첫 곡 「I'm Coming Home」의 부산스러움이 끝나고 나면, 선이 굵은 남성 보컬이 나오고 이윽고 베이스의 내밀한 이야기가 들린다. 짙은 나무 그늘 같다. 베이스는 잠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 소리가 사라져도 축축하다. 베이스는 언더그라운드다. 「Family Affair」에서도 베이스는 잠깐 나타난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처럼 베이스는 잠시 나타났다 휙 사라진다. 대체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 혹은 한 시대의 장을 새롭게 여는 사람들은 나름의 색깔과 스타일이 있다. 맥브라이드의 베이스는 펑키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는다. 기우뚱 기우뚱 그렇게도 한번 살아보는 것이다.


그랜트 그린의 기타는 날렵하다. 처마 밑으로 쏟아지는 햇살이다. 그린의 기타는 깃털 같다. 음의 무거운 부분은 모두 제거 됐다. 귓전으로 옛 이야기가 들린다. 혼신으로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된다. 겨울밤보다는 가을에, 가을보다는 여름이 훨씬 제 맛이다. 그린의 기타는 안일하지 않다. 촘촘하다. 마치 입담 좋은 친구의 지치지 않는 이야기 같다.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아 우울한 몸에 좋은 위안이다. 가끔씩 재즈 기타가 그리울 땐 단연 그랜트 그린이 최고이리라. 기교에 앞서 성실성이, 성실성에 앞서 진솔한 맛이 우선이다. 화려하지 않다. 소읍의 거리 냄새가 난다. 장맛비 그치고 후텁지근한 밤, 그린의 기타는 레몬주스와 같다. 앨범의 두 번째 곡 「My Favorite Things」는 콜트레인의 색소폰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즈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랜트 그린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는다. 한 음도 느슨하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로 풀어나간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모두 소비할 때까지, 한 땀 한 땀 정성들이는 바느질이다. 아름다운 밤의 별들을 본 지 오래되었다면 그랜트 그린의 기타를 들으면 별이 촘촘한 밤이 떠오를 것이다. (matador/ Grant Green /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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