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반가사유적- 듣기

by 일뤼미나시옹


그대가 그대 자신을 알 수 없을 때는 그대의 수호신과 영적 스승이 누구든지 강한 애정과 겸허한 믿음으로 그들에 대해 명상하라. 그들이 그대의 정수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라.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말라. - 티벳 사자의 書


5148339218_a882831fef_o.jpg

에바 캐시디는 서른 셋에 죽었다. 평생 남의 노래만 불렀다. 살아있는 동안에 별 볼일 없는 가수에 다름 아니었다. 자기 노래가 없었던 탓이다. 그녀가 죽자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를 재평가했다. 에바 캐시디는 남의 노래를 자기 노래로 바꿔 불렀다. 남의 노래에 자기를 불어넣었다. 남의 노래에 자기 생을 실었다. 노래가 끝나면 몸에 한기가 찾아온다. 이 한기, 는 애바 캐시디의 생이다. 그렇게 죽을 수 없을까. 노래만 듣다가 죽을 수는 없을까. 나는 다만 그렇게라도 죽음을 만난다면 좋을 것이다. 한편, 시인들은 어떤가. 평생 자기 노래만 찾아 헤맨다. 자기 노래가 세상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지금 시인들의 노래는 밤의 붉은 십자가 같다. 노래는 가지가지지만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 노래가 세상을 적시는가. 세상이 노래를 기다리는가. 혼신으로 노래 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방에서의 외침. 우리 시대 시인들의 초상이여. 외침과 노래는 다른 것.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아무리 애써 불러보아도 절대 미학의 한 소절은, 알면서도 다다를 수 없네. (Song Brid/ Eva Cassidy/ Bix Street)

2272784210_2d48408e0b_o_garbar66.jpg


콜트레인의 색소폰을 듣는다. 그의 색소폰을 들을 때마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과 답이 동시에 밀려온다. 콜트레인의 색소폰에는 ‘정지’와 ‘움직임’이 공존한다. 시를 보면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콜트레인 색소폰의 발화를 통해 그의 고뇌와 창조성을 만날 수 있다. 콜트레인의 발화에는 숙고하는 노인과 창조하는 아이, 두 존재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앨범 『Coltrane 「Impuls!」』를 통해서 콜트레인 색소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콜트레인의 앨범 중에서도 수작으로 생각한다.

첫 곡 「Out of this world」는 14분의 긴 연주 시간이다. 곡의 도입부에서 금세 콜트레인의 세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선명하고도 분명한 굵기의 선을 통해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곧바로 토로한다.그렇다고 청자에게 부담을 주거나, 거부감이 깔려 있지도 않다. 색소폰은 일정한 속도와 무게감을 유지한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성격 무난한 친구의 일관된 이미지와 닮았다고 할까. 그러나 여기에서 한 발만 더 들여놓으면 그야말로 재즈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색소폰은 청자를 얽어매지도 않고 긴장시키지도 않는다. 청자를 편안하게 몰입시킨다. 어떤 일의 진행을 아주 천천히 정지시킨다. 무슨 회한이나 내적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화자의 내면을 보여주는 시적 요소가 있다. 색소폰이 이끄는 세계(Intro)로 빠져들면 구불구불한 길이 나타난다. 소리가 풀어주는 길의 내재성을 어떻게 듣는가는 청자의 몫이다. 급하지도 않고 안일하지도 않으면서 일관된 시야를 확보한 채 반듯하게 정지해 있다.

두 번째 곡 「Soul eyes」는 다소 지친 듯한 연주로 시작한다. 느슨하다. 어깨 한쪽이 축 처져 있다. 눈는 그렁그렁한 언어가 가득한 시인의 모습이다. 지난 달 삼성병원에서 만난 한 사내의 눈이 생각난다. 술에 취해 있었고, 어눌한 말이 입에 맴돌았다. 발걸음은 휘청거렸지만, 눈에는 선한 기운과 불 같은 광기가 공존했다. 잠시 만났던 눈이지만 가을 내내 그 눈이 자꾸 생각난다. 말과 눈.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눈이 무섭고, 신성하였다.

「Tunji」는 네 번째 곡이다. 이 곡은 여러 번 듣고 또 듣게 된다. 조용한 강변 같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다. 참으로 진지하고 성실하다. 잠시 방문한 손님의 인상적인 옷차림 같다. 콜트레인의 색소폰을 듣고 있으면 뭐랄까, 방심할 수 없다는 느낌. 그래서 몸이 단정해진다고 할까. 단정한 몸으로 나무를 대하고 싶은 햇빛 창창한 가을이다.

다섯 번째 곡 「Mile's Mode」는 색소폰의 화려한 수사로 시작한다. 아방가르드 색채감이 다분하다. 현대 재즈의 표현기법이 이미 여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한 꿈틀거림이 재미있다. 음의 높낮이가 화려하지만 혼란스럽거나 몽환적이진 않다. 한바탕 꽃잔치를 보여준다. 음을 뽑아내는 콜트레인의 몸이 전폭적으로 소리에 매달려 있다. 자신감 있게 활달한 붓놀림을 보여 주듯 색소폰은 유연하며 확고하다. 전면에서 자기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그림 그리기가 끝나면 뒤로 물러나고,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다.

마지막 곡 「Up' Gainst the Wall」에서는 플레이징의 화려함이 무엇보다 뛰어나다. 몸을 흔들게 하는 스윙감과 격정이 두드러진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만취한 아버지 입가에 침 흘리면서 추던 춤이 생각난다. 그게 춤이었던가. (John Coltrane 〔Impulse!〕/ John Coltrane/ Impulse)

3752748293_d80a72bd32_o_garbar66.jpg


백열등 밑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있었다. 겨울이면 그 솥에서는 명주실뭉치 같은 하얀 김이 일었다. 외양간에 있는 황소 두 마리가 먹을 여물을 삶는 솥이다. 볏짚이며 콩깍지 등겨를 넣어 무르게 푹 삶는다. 밤의 공기는 여물 익는 냄새로 가득하고, 겨울옷에도 구수한 여물 냄새 배어든다. 여물이 익을 동안 불을 지피느라 이마도 발갛게 익고, 불이 시들어 일어나면 바지에서 정전기가 일어나는 겨울 밤. 군불이 지펴진 방에서는 나훈아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고교시절, 나는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에 홀려 있었던 터라 트로트 멜로디는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창생의 취향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을 나무의 채색이 전날과 완전히 달리 보이는 휴일 아침. 갑자기 그 가마솥 앞이 그리워진다. 이미 죽어버린 시간, 기억에만 존재하는 시간, 겨울 밤 공기 속으로 퍼져나간 트로트 멜로디와 겨울옷에 배어든 여물 냄새, 불 냄새가 맡고 싶다. ( Eric Vloerimas/ Bitches and Fairy Tales/ Challange)


vloei.jpg






봉산동 골목길이다. 밤 9시 45분이다. 주차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추자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열이 난다. 길 끝에 그가 있다. 내가 묻는다. “밤 9시 45분이나 됐는데, 이러고 싶냐”고. 그러자 그가 되묻는다. “당신은 왜 이 시간에 이런 데 차 댔냐”. 나는 할 말이 없다. 밤 9시 45분인데, 차도 안 다니는 골목길인데. 그는 집에도 가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에 스며 있듯이 있다. 안톤 체홉 소설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어느 관리의 죽음」이었던가. 그는 열 받은 내 얼굴을 차라리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반발을 어떻게 이겨내겠는가. 그는 나 같은 자의 반발을 이겨내는 법을 알고 있다. 나는 돌아선다. 어떤 이는 평생 책 보다 죽고, 어떤 이는 평생 기도하다 죽고, 어떤 이는 평생 술만 퍼마시다 죽는다. 예외지만 죽은 외삼촌처럼 평생 집 나간 마누라 찾아 헤매다 죽은 이도 있다. 열 받아 내달리는 차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모습이 백미러에 들어와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백미러에는 가을 하늘 대신 그의 모스브이 들어서 있을 것이다. 손에 주차 위반 스티커 뭉치를 들고서. (Night Bird Song/ Thomas Chapin/Knitting Factory)


https://youtu.be/Rp2Iag7kyH0



4650149034_3643e20785_o.jpg


빗물이 차올라 번진 담벽의 물이끼는 장마 끝난 뒷 맹렬한 땡볕에 말라 덕지덕지 일어났다. 담 밖으로 호두나무 그늘이 출렁거리며 드리워져 있고, 그늘 속에는 녹색 파라솔 의자가 놓여 있다. 여름 내내 의자에는 팔순 노인이 앉아 있다. 깊고 고요하게 앉아 있다. 주위의 모든 소란스러움이 노인의 몸으로 빨려드는 것 같다. 나무 그늘의 깊고 고요함이 노인을 더 고요한 몸으로 만든다. 마을을 관통하는 국도변에는 별다른 풍경도, 이야깃거리도, 사건도 없다. 낮의 뜨거운 태양과 한두 마리의 새가 나는 허공만 있다. 파라솔 의자의 노인은 그렇게 여름을 그 자리에 앉아 보내고 있다. 차 타고 지날 때마다 상상한다. 내가 그 자리에 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내가 나직이 숨쉬며 앉아 하루가 천 일 같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이 깜깜해지고, 지나가는 새의 노래가 무슨 메시지처럼 들리는, 노인이 된 상상을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를 떠난 사람들만 기억 속에 가득한, 노인이 된 상상을 한다. 다만 호두나무 푸른 가지만이 내 이마 근처로 뻗어 나와 나의 옅은 숨소리를 들어주는 상상. 말라 오그라든 몸피와, 담배 몇 모금 빨다 만 입과 코에서 뿜어지는 시큼한 몸냄새를 맡는 호두나무 그늘. 그렇게 여름 한철이 가고, 가을볕이 드는 담벽엔 파라솔 의자도 보이지 않고, 호두나무에서 벌레 먹은 마른 잎이 떨어진다. 어찌된 일인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 Dialogue/ Bobby Hutcherson/ Blue Note)





베이스는 중년이다. 베이스에는 도발도, 저항도 없다. 베이스에는 관용이 가득하다. 베이스는 회색이다. 무거운 회색이다. 베이스는 낡은 구두 뒤축이다. 베이스는 말의 소멸을 꿈꾼다. 말을 버러지 않으면 베이스를 들을 수 없다. 베이스는 말의 추방을 꿈꾼다. 베이스는 침묵의 사원이다. 베이스 음은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입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 퉁겨진 현이 떨릴 때의 질감은 11월이다. 베이스에는 11월의 한기가 있다. 낡은 구두와 시린 허리, 그것이 중년 아닌가. 베이스는 흑백이다. 베이스는 어눌하다. 어벙어벙한 언어다. 해 떨어지고 없어도 노을의 흔적은 중년의 어깨에 남아 있다. 베이스는 그런 것이다. 음악이 끝나도 베이스는 청자의 마음 한쪽에 스며 있다. (Like a Dream/ Darek Oles/ Cryptogramophone)

1212108035_03ef0b08e1_o.jpg


아침의 저수지로 간다. 저수지가 피워 올리는 물안개를 만나러 간다. 물안개는 지난 밤, 달과 물이 만난 이야기. 물과 달의 은밀한 이야기. 달의 몸이 어떻게 물에 들어갔는지. 달을 품은 물은 조금 아팠는지. 물 위로 피어오른 안개는 달과 물의 에로티시즘. 달의 몸이 차가웠는지. 물이 차가웠는지. 분홍색 고양이 앞발이 살짝 잠자는 내 뺨을 어루듯, 달은 물을 건드렸는지. 물 속에서 하룻밤, 달이 묵었는지. 물 속에서 하룻밤, 달이 익었는지. 달의 신음과 달의 흐릿한 의식. 일생의 희열이여 수면 위 풀어진 물안개의 희열이여. ( Dust/ Ben Monder/ Arabesque)


https://youtu.be/SKuFf2pMuKo

21788890373_2f9b8ca73f_o.jpg


여섯 바르도의 서서(序詩)

-『티벳 死者의 書』중에서

아, 지금은 출생지의 바르도가 내 앞에 밝아 오는 때!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 구도자의 삶에 게으름이란 없는 것./ 진지하게 듣고 사색하고 명상하며/ 마음이 흩어짐 없이 존재의 근원으로 들어가/ 마음과 현상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되기를./ 그리하여 존재의 근원과 하나가 되기를./ 한번 인간의 몸을 얻으면/ 인간의 삶을 게으름으로 헛되이 써 버리지 않게 되기를. ( Open, To Love/ Paul Bley/ ECM)


https://youtu.be/yo13SWa4fwM

폴 블레이.jpg


keyword
일뤼미나시옹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