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낭시 , 코르푸스
1. 몸은 물질적이다. 몸은 밀도를 지니며 침범할 수 없다. 만약 몸 안에 침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몸을 분해하고 꿰뚫고 찢는 것이다.
2. 몸은 물질적이다. 몸은 따로 떨어져 있어 다른 몸들과 구분된다. 하나의 몸은 다른 하나의 몸에 대해서 시작되고 끝난다. 심지어 빈 공간조차도 매우 미묘한 몸의 일종이다.
3. 몸은 비어 있지 않다. 그것은 다른 몸들 -온갖 조각과 기관, 부분, 조직, 연결부, 고리, 관, 일종의 지렛대와 풀무들로 가득 차 있다. 몸은 또한 저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 요컨대 그것은 저를 이루는 모든 것이다.
4. 몸은 길고 , 넓고, 높고, 깊다. 더 크거나 더 작은 저마다의 크기 안에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몸은 확장된 것이다. 몸은 양편으로부터 다른 몸들과 접촉한다. 몸은, 심지어 말랐다 하더라도, 비대하다.
5. 몸은 비물질적이다. 몸은 일종의 데생이고, 윤곽이고, 관념이다.
6.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유기적으로 조직된 몸의 형태라고 보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몸은 그 형태를 그려내는 것이다. 몸은 형태의 형태이자 영혼의 형태이다.
7. 데카르트에 의하면 영혼은 몸의 도처를 거쳐 확장된다. 그것은 어디서나 몸 전체를 따라, 또 몸 바로 그 자체에서 송두리째 스며들고, 미끄러지고, 투과되고, 물들이고, 사방으로 뻗고, 숨을 불어넣고, 형상을 빚는다. 영혼은 몸에 편재한다.
8. 영혼은 물질적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성질을 띤, 즉 자리도 크기도 무게도 갖지 않는 물질로 되어 있다. 어쨌든 영혼은 아주 미세한 방식으로 물질적이다. 그렇기에 영혼은 시선에 포착되지 않는다.
9. 몸은 가시적이나 영혼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몸이 마비된 사람이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알맞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잘 보지만, 심술궂은 사람이 자기 영혼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의 심술궂음이 영혼이 마비된 탓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영혼의 마비에 대항하여 싸워 그것을 굴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기초다. 친애하는 니코마코스.
10. 영혼에게 몸은 또한 일종의 감옥이기도 하다. 영혼은 이 몸이라는 감옥 속에서 비록 그 성질은 간파하기 어려우나 매우 심각했음에 틀림없는 고통을 씻어내야 한다. 몸이 영혼에게 그토록 무겁고 불편한 것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몸은 먹은 것을 소화해야 하고, 자야 하고, 배설해야 하고, 땀 흘려야 하고, 스스로를 더럽혀야 하고, 상처를 입어야 하고, 병에 걸려야만 한다.
11. 치아는 감옥의 채광창에 설치된 철책이다. 영혼은 입으로부터 말이 되어 빠져나간다. 그러나 말 또한 여전히 몸에서 비롯하는 방출물이자 발산물, 몸에 의해 데워져 허파에서 솟아나는 공기의 가벼운 주름들이다.
12. 몸은 저로 하여금 말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상상하도록 할 수 있다. 몸은 항상 무엇인가를 느낀다. 몸은 육체로 된 모든 것들을 감지한다. 그것은 피부와 돌, 금속, 풀, 물과 불꽃을 느낀다. 몸은 끊임없이 감각한다.
13. 그러나 느끼는 것은 영혼이다. 영혼은 우선 몸을 느낀다. 영혼은 사방에서 저를 담고 잡아두는 몸을 느낀다. 만약 몸이 영혼을 가두지 않는다면, 영혼은 증기 같은 말들로 새어나와 창공으로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리라.
14. 몸은 순수한 정신과 같다. 몸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저 자신의 몫으로, 저 자신 안에, 하나의 점 안에 유지한다. 만약 그 점을 부숴버린다면, 몸은 죽는다. 점은 두 눈 사이에, 양 갈비뼈 사이에, 간의 한가운데에, 두개골 언저리에, 대퇴골 동맥의 한복판에, 그 외 많은 점들 속에 위치한다. 몸은 정신들의 총집합이다.
15. 몸은 일종의 봉투다. 따라서 몸은 이후에 열어서 펼쳐야 할 것을 담는 역할을 한다. 펼치는 일은 끝이 없다. 유한한 몸은 무한을 담는다. 따라서 무한은 영혼도 정신도 아니라 몸의 펼침, 바로 그것이다.
16. 몸은 감옥이거나 일종의 신이다. 그것의 중간은 없다. 또는 중간이란 오직 분쇄된 것, 해부되거나 박피된 것일 터인데, 이 중 어떤 것도 몸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몸은 시체이거나 영광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시체와 영복의 몸이 공유하는 것은 빛나는 부동의 광채. 요컨대 입상(立像)이다. 몸은 입상으로 완결된다.
17. 몸 대 몸, 갈비뼈 대 갈비뼈, 혹은 얼굴 대 얼굴.... 나란히 있거나 마주보거나, 그러나 가장 흔하게는 그저 뒤섞여 있거나 맞닿은 채 피차 별 상관없이 있는 몸들, 하지만 그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교환하지 않는 몸들이야말로 수많은 양의 신호와 경보, 눈짓, 또는 수신호를 서로에게 보낸다. 순하거나 거만한 태도, 성가심, 매력적임, 의기소침, 묵직함, 섬광, 또는 우리가 '젊음'이라든가 '노쇠,' 혹은 '노동'이나 '권태, ' '힘'이나 '서투름' 따위의 단어들 아래에 놓을 수 있는 그 모든 것들.... 몸들은 서로 교차하고 스쳐 지나가고 서로 누른다. 버스에 오르면서, 길을 건너면서, 슈퍼마켓에 들어서면서, 차에 타면서,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극장에서 다른 열 개의 몸들 앞을 지나 마침내 자기 자리에 앉으면서......
18. 몸은 그냥 영혼이다. 주름졌든, 기름지거나 건조하든, 털이 많든 굳은살이 박였든, 까끌까끌하든 유연하든, 우아하든 배가 나왔든, 윤기가 돌든 광채가 나든, 요란하게 화장을 했든 오건디 천으로 감쌌든, 얼룩덜룩한 카키색 위장복을 입었든 기름때와 상처와 사마귀로 뒤덮였든, 이 모든 것은 아코디언이나 트럼펫, 또는 비올라의 몸통으로서의 영혼이다.
19. 목덜미는 꼿꼿하고, 심중의 깊이는 측정해야 한다. 간엽은 우주를 재단하고, 성기들은 짖는다.
20. 몸은 차이이다. 고로 몸은 힘이다. 정신은 힘이 아니라 자기 동일성이다. 하나의 몸은 다른 여러 힘과 다른 힘이다. 나무 앞의 남자, 도마뱀 앞의 개, 고래와 낙지, 산과 빙하, 너와 나.
21. 몸은 차이다. 몸이 - 정신이 동일성인 것과 달리 - 모든 다른 몸과의 차이인 이상, 그것은 끊임없이 차이를 낳는다. 심지어 몸은 자기 자신과도 차이를 지닌다. 아기와 노인을 어떻게 인접시켜 생각할 수 있겠는가?
22. 몸들은 저마다 다르기에 하나같이 얼마간의 기형성을 지닌다. 완벽하게 빚어진 몸이란 몸의 세계 내에서는 불편을 끼치는 몸, 경솔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다. 그것은 설계도이지 몸이 아닌 것이다.
23. 머리는 몸에서 따로 분리된다. 그러기 위해서 참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머리는 그 자체가 스스로 분리되고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다. 몸은 하나의 전체로 서로 연관되고, 구성되고, 조직된다. 머리는 단지 구멍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멍들의 텅 빈 중심은 점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무한한 집중인 정신을 매우 훌륭하게 표상한다. 동공, 콧구멍, 입, 귀, 이런 것들은 다 구멍이다. 공동空洞이 되어 몸 바깥으로 도주하는 것들이다. 다른 구멍들, 즉 하체의 구멍들을 제외하면, 이러한 공동들의 집중은 가늘고 부서지기 쉬운 통로, 즉 골수 및 부풀거나 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기타의 경로가 지나가는 목에 의해 몸에 부착된다. 복합적인 몸을 구부려 단순한 머리에 연결시키는 가냘픈 부착점. 근육을 지니지 않은 머리에는 다만 힘줄과 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른 회색의 실질, 순환 회로와 시냅스가 있을 뿐이다.
24. 머리를 제외한 몸은 저 자신에 갇힌다. 몸은 제 근육들을 그것들끼리 묶고 제 장기들을 서로서로 얽어맨다. 머리는 단순하다. 그것은 벌집 구조와 각종 액체로 이루어진 결합체를 세 겹의 피막으로 감싸놓고 있다.
25.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면, 신은 하나의 몸을 갖는 셈이다. 심지어 신은 아예 하나의 몸 자체이거나 아니면 모든 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몸일 수도 있다. 몸들의 사유의 몸.
26. 감옥이거나 신이거나. 그 중간은 없다. 봉인된 덮개, 아니면 열린 덮개, 시체, 아니면 영광. 접힌 주름, 아니면 펼쳐진 주름.
27. 몸들은 서로 교차하고 스치고 압박하고 얽히고 부딪힌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결코 한정된 의미로 충족시킬 수 없는 그만큼의 기호와 신호, 청원과 경고로 만든다. 몸들은 의미로 하여금 의미-너머out-sens가 되도록 한다. 몸이란 의미의 너머편이다. 몸이 죽어서 뻣뻣하게 굳어을 때에야 비로소 저 자신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어쩌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몸을 영혼의 무덤으로 해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죽음은 움직임을 멎게 하며, 그러면 체념한 움직음은 더 이상 움직이기를 포기한다. 영혼 안에서 '움직여지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 몸이다.
28. 몸. 즉 매끈하거나 주름진, 기름지거나 마른, 털이 없거나 많은 영혼. 혹이 났거나 성처가 난 영혼. 춤추거나 잠겨드는, 굳은살이 박였거나 축축하거나 땅바닥에 넘어지는 영혼 ....
29. 몸, 몸들. 유일한 단 하나의 몸만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몸은 차이를 갖는다. 몸들은 서로에 맞서 자리하거나 내밀어지는 힘들이다. '맞섬contre'(~에 반대하여, ~와 마주쳐서, '완전히 맞서서'...... )은 몸의 주요 범주이다. 다시 말해 몸은 차이와 대조, 반발, 포착, 침투, 배척, 밀도, 무게, 그리고 척도의 작용이다. 내 몸은 제가 걸친 옷의 섬유조직에 맞서서, 제가 들이마시는 대기 속 연무에 맞서서, 반짝이는 빛과 스쳐 지나가는 어둠에 맞서서 존재한다.
30. 고유한 몸. 몸은 고유하려면 낯설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길들여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는 제 손이나 발, 배꼽을 쳐다본다. 몸은 무단 침입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정신 안으로,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향해 현존하는 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침입자다. 게다가 정신은 너무나도 점 같은 것이며 스스로의 '자기 안에서 자기를 향하는 존재 etre-asoi-en-soi'에 꼭 붙어 있는 것이어서, 몸은 저 스스로의 매스를 일종의 종기로, 정신 외부의 종창 같은 것으로 부풀리고 팽창시키지 않고선느 결코 정신 안으로 침투할 수 없다. 악성종양, 정신은 결코 그로부터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31. 우주적인 몸. 내 몸이 차츰차츰 모든 것에 닿는다. 내 엉덩이가 내 의자에, 내 손가락들이 자판에, 의자와 자판이 탁자에, 탁자는 마루에, 마루는 지반에, 지반은 다시 지구 중심의 마그마와 이동하는 지각판에. 만약 내가 반대 방향으로 떠난다면, 나는 대기를 통해 은하에, 그리고 마침내 우주의 끝없는 경계변에 가 닿을 것이다. 신비한 계시의 몸, 범우주적인 실질, 그리고 수많은 끈에 의해 잡아당겨지는 마리오네트.
32. 먹는 것은 먹은 것을 몸으로 합병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을 제가 삼킨 것을 향해 여는, '안'을 가령 생선이나 무화과의 맛으로 발산하는 행위다. 달리는 행위 역시 이 안을 성큼성큼 내닫는 발걸음으로, 피부에 닿는 날공기로, 가쁜 숨으로 펼치는 일이다. 생각은 힘줄이나 다양한 동력 수단을 움직여 그것들을 솟아오르는 수증기로, 지평선이라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소금 호수를 건너가는 장정으로 만든다. 몸 안으로의 합병 같은 것은 없다. 대신 언제나 나가는 것, 비트는 것, 벌어지는 것, 게워내는 것, 횡단하는 것, 흔들거리며 균형을 찾는 것들만이 있을 뿐이다. 영양의 흡수란 형이상학적 공상이다.
33. '이것이 나의 몸이다' = 내 유일한 현전에 관한 암묵적이고 지숙적인 확언. 이 말에는 '이것' 이라는 거리가 함축되어 있다. 내가 당신 앞에 내미는 이것이 여기에 있으니, 그것은 곧 '나의 몸'이다. 즉각적으로 두 개의 질문이 내포된다. 이 '나의'란 말은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가? 만약 '나의'가 소유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때 소유는 어떤 성질을 띠는 것인가? 즉 누가 그 소유주이며 그의 소유는 어떤 합법성에 의거한 것인가? '누구의'라는 것에 대한 대답은 없다. 왜냐하면 이 '누구'는 몸의 소유주인 동시에 몸이기 때문이다. '소유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연권인 동시에 (내가 내 몸을 일구고 돌볼 때에는) 노동권이자 획득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몸'이라는 말은 그 표현의 두 단어에 자리를 할당할 수 없단느 사실로 이어진다. (누가 너에게 네 몸을 주었느냐? 어느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다. 그 어떤 기획도, 그것이 유전자의 것이든 조물주의 것이든, 너를 만드는 데는 충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가 너 자신에 앞서 존재한다는 말인가? 너의 탄생 배후에 네가 있다는 것인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의 등 뒤에 있지 않은가? 나는 언제나 '내 몸'에 다다르기 직전에 있지 않은가?)
34. 사실 '나의 몸'이 가리키는 바는 고유성이 아니라 점유, 다시 말해 적법화의 절차를 밟지 않은 사유화다. 나는 내 몸을 차지하고, 그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룬다. 나는 내 몸에 대해 소유 및 남용의 권리 jus uti et abutendi 를 지닌다. 하지만 몸도 나를 소유한다. 몸은 나를 잡아당기거나 나를 거북하게 한다. 몸은 나를 가로막고, 붙잡으며, 밀거나, 뿌리친다. 몸과 나, 우리는 서로에게 사로잡힌 possedes 한 쌍, 신들린 한 쌍의 춤꾼인 것이다.
35. '사로잡다possedes're라는 말의 어원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위에 얹히다 etre assis dessus' 쯤이 될 것이다. 나는, 마치 장님의 어깨 위에 올라탄 아이나 난쟁이처럼 내 몸 위에 얹혀 있다. 그리고 내 몸은 그것대로 내 위에 얹혀 제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36. 코프푸스. 몸은 온갖 부분과 조각들, 사진, 지대와 상태, 기능의 총집합체이다. 머리, 손, 연골, 화상, 감미로움, 분출, 졸음, 소화, 격분, 흥분, 호흡, 자기 재생산, 자기 갱신, 타액, 관절액, 비틀기, 경련, 그리고 미인점. 집합체들의 집합체, 곧 corpus corporum이 몸이다.그러나 이러한 몸의 일치는 일치 자체에도 하나의 의문으로 남는다. 심지어 기관 없는 몸의 자격으로 고려될 때조차도 몸은 어쨌든 백 가지 기관을 지니며, 그 기관들은 전체를 저마다 제 편으로 당겨 탈조직화한다. 그럼으로써 전체는 더 이상 스스로를 총체화하는 데 도달하지 못한다.
37. '이 포도주는 얼마간의 몸을 지닌다.' 포도주는 입 안에 일종의 두께, 맛에 동반되는 어떤 견고성을 남긴다. 포도주는 양 볼 사이와 입천장 아래에서 혀에 감기며 그 혀가 저를 접촉하고 더듬도록 내버려둔다. 포도주는 위장에 유입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어서, 입 안에 얇은 껍질 같은 것, 다시 말해 제 향취와 원기로 이루어진 섬세한 막 또는 침전물을 깔아놓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이 몸은 얼마간의 포도주를 지닌다.' 포도주는 머리로 올라가고, 정신을 매혹하고 마비시키는 증기를 발산한다. 정신을 건드리라고, 그것과 접촉하여 전율하라고 부추기고 선동한다.
38. 어떤 몸이 우리에게 감각적이고 에로틱하며 정감적인 방출을 초래한다는 것처럼 기이한 사실도 없다. (역으로 또 다른 몸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몸의 어떤 생김새, 마르기의 유형, 머리색, 자태, 눈을 뜨는 방식, 어깨나 턱, 손가락의 어떤 움직임이나 특유의 형태...... 거의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하나의 억양, 주름,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선...... 이런 것들은 한 몸의 영혼이 아니라 정신이다. 정신의 뾰족점, 정신의 서명, 정신의 냄새.
39. '몸'은 '머리'와 구분되는 것만큼이나 '사지'와 또는 적어도 '말단부'와 구별된다. 그렇게 보면 몸은 곧 몸통이자 지지대고 기둥, 버팀목, 건물의 지주 같은 것이다. 머리는 하나의 점으로 축소된다. 엄밀히 말해 머리에는 표면이라는 것이 없다. 머리는 구멍, 공동,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전언이 나가고 들어오는 출입구들로 이루어진다. 말단부도 비슷한 방식으로 제 주변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일련의 기작을 수행한다(걷기, 뻗치기, 잡기 등). 몸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무관한 상태로 있다. 몸은 제 위에, 저 자신에 얹혀 있다. 머리는, 잘려나가진 않지만, 작게 쪼그라들어 이 몸통 위에 마치 핀처럼 꽂힌다.
40. 몸은 자기 지향 속의 자기 자체 I'en soi du pour soi에 해당한다. 자기와의 관계에서 몸은 관계없음의 계기이다. 몸은 침투할 수 없고 침투 되지 않는다. 몸은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장님이고 모든 접촉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다. 몸은 육중하고 무겁고 둔중하며 비정하다. 또한 몸은 타자 지향 속의 자기 자체 I'en soi du pour les autre 이기도 하다. 몸은 타자들을 향하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해 어떤 고려도 하지 않는다. 몸은 다만 실제적effectif 이되, 절대적인 방식으로 그러하다.
41. 몸은 제 비밀을 -아무것도 아닌 그것, 그러니까 몸 안의 한 곳에 머무르는 대신 퍼지고, 펼치고, 몸 전체를 거쳐 유포되는 정신을 퍽이나 훌륭하게 간직함으로써 비밀이 아무런 은둔처를 지니지 않게끔, 언젠가는 그것을 캐낼 수 있을 어떤 은밀한 주름 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게끔 한다. 몸은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몸은 저 자신을 비밀로 지킨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죽는다. 죽어서 스스로를 무덤 속 비밀로 가져간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기껏 몸의 지나감을 알리는 몇 개의 지표일 뿐이다.
42. 몸은 무의식이다. 세포 속에 배열된 조상들의 유전자, 무기염의 섭취, 연체동물 쓰다듬기, 불쏘시개와 땅 밑의 시신이 된 몸을 먹는 벌레들, 혹은 그 몸을 태우는 불꽃, 그 불꽃에서 비롯하는 재, 손대서는 안 될 재가 된 몸, 몸이 스치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 식물들, 그리고 동물들, 먼 옛날 유모들의 전설, 허물어져 지의地衣로 뒤덮인 유적들, 공장의 거대한 터빈들이 몸을 위해 가공해내는 전대미문의 합금음, 거칠거나 스스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되어버리는 음소들, 비석에 새겨진 법문들, 그리고 살해나 불사를 꿈꾸는 은밀한 욕망들. 몸은 뼈마디가 불거진 제 손가락들로 비밀스러운 끝 전체를 건드린다. 그리고 모든 것은 몸을 형성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세계의 마지막 날을 종결하는 빛의 세필 아래 모여들어 격렬히 춤추는 먼지들의 코프푸스에 다다르는 것으로 끝난다.
43. 어째서 형질이나 기호, 또는 분별적 특징이 아니라 징표들 indices 인가? 몸은 빠져 달아날 뿐 결코 확언되지 않으며, 의혹을 남길 뿐 결코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언제나 사람이 자기 집이나 자동차, 자기 말이나 당나귀, 또는 자기 요라고 여기는, 좀더 큰 또 다른 몸의 일부만이 될 수 있을 따름이리라. 또는 사람이 자기 영혼이라 부르는, 그리고 그가 죽을 때 그의 입에서 삐져나오는 저 아주 작고 희미한 또 다른 몸의 분신에 지나지 않으리라. 우리가 우리 것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지시와 자취, 각인된 자국, 그리고 흔적들뿐이다.
44. 영혼, 몸, 정신, 영혼은 몸의 형태이고 정신은 영혼을 생산하는 힘이다. 몸은 따라서 정신의 표현 형태 la forme expressive이다. 몸은 정신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정신이 바깥으로 솟아오르도록 하고, 그것의 즙액을 짜고, 그것의 땀을 빼고, 그것의 불똥을 뽑아내어 공간 속에 송두리째 투척한다. 몸은 급작스러운 폭발과도 같다.
45. 몸이 우리의 것이고 우리에게 고유하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몸이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으며 우리의 고유한 존재의 내밀함을 피해 빠져 달아난다는 한도 내에서 그러한 것이다. (만약 고유한 존재란느 것이 존재한다면 몸이 우리로 하여금 심각하게 의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리라.) 그런데 그 어떤 제한도 겪지 않는 이 동일한 한도 내에서, 우리의 몸은 단지 우리의 것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다시 말해 그것이 죽어 분해되는 그 순간까지 우리,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몸이 분해될 때 우리 또한 똑같이 썩어서 분해된다.
46. 어째서 징표들인가? 몸의 총체성, 종합적 단일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들이 있고, 지대와 단편들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끝 다음에는 또 다른 끝이 있으니 위, 눈썹, 엄지손톱, 어깨, 가슴, 코, 소장, 수담관, 맹장....... 해부는 끝이 없어서, 결국 세포들을 일일이 세는 작업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나 그마저도 총체성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이번에는 반대로 가능하다면 조각 낱낱에 각인된 영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목록 전체를 즉시 다시 수립해야만 하는데 조각들과 세포들은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명세서는 아무런 보람 없는 셈을 계속할 따름이다.
47. 몸의 외부성과 이타성 alterite은 마침내 견딜 수 없을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배설물, 오물, 혐오스러운 배출물은 여전히 몸의 일부를 아루고 몸의 실질에 포함되며, 무엇보다도 몸의 활동에 속한다. 몸은 그것들을 추방해야 하고, 그것은 결코 사소한 직무가 아니다. 배설물에서부터 자라나는 손톱이나 털, 온갖 종류의 사마귀나 화농성 뾰루지에 이르기까지, 몸은 흡수 과정이 남긴 찌꺼기와 여분 즉 자기 생명의 잉여분을 저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바깥으로 떼어내야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도, 보거나 느끼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몸은 그 사실에 관해 수치심과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불편함과 곤혹감을 느낀다. 영혼은 몸의 어떤 일부분에 대해서는 - 저 자신이 그것의 고유한 형태인데도 - 깡그리 침묵하기로 한다.
48. 몸의 정확성은 바로 그것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끝에, 흉골에 아래족에, 유두에, 오른쪽에, 왼쪽에, 위에, 아래에, 깊숙이, 표면에, 희미하게 퍼져서, 혹은 점적으로 분명하게, 고통이거나 쾌이거나, 자판의 접촉면에서 내 손가락들의 표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그런 것처럼 그저 단순한 기계적 전달. 심지어 희미하게 번지는 두루뭉술한 감각에 의해 기술되는 것마저도, 매번 아주 명확한 방식으로 빛을 발하는 이 '희미함'의 정확성을 주시하는 것이다. 정신의 구체적 정확성이 수학의 영역에 든다면 영혼의 구체적 적확성은 물리의 질서 속에서, 그램과 밀리미터의 단위로, 분출에 대한 대가로, 침전화의 속도로, 호흡 계수로 드러난다. 정신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해부에는 단순화 기제 reducteur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극도로 정밀 정확하게 영혼을 드러내는 것이다.
49. 몸의 비정확성은 또한 이러하다. 여기 대략 사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왠지 냉정하고 신경질적인 태도, 수심에 차 있으며 어쩐지 약간 사람을 회피하는 듯한 표정. 그는 좀 뻣뻣한 자세로 걷는다 어쩌면 그는 교수나 의사일 수도 있다. 아니면 판사이거나 행정가,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닌 듯,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으며 안색이 가무잡잡한 걸로 보아 지중해 지역 출신일 수 있겠다. 어쨌든 북방계는 아니다. 게다가 그는 지극히 평균적인 키를 갖고 있으니까. 그가 좀 어색해 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된다. 권위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좀 의심스럽다.....이런 유의 장부는 한참 더 작성해나갈 수 있다. 그만큼 무수한 징표들이 하나의 동일한 몸 위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은 점에서 틀리리란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쩌면 전부 다 틀릴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범할 리는 없다. 단 예외가 있다면 완벽한 기술을 동원한 변장술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일 텐데, 그렇다면 그와 같은 변장술은 아예 종이나 유형의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원천에서 형질을 끝어다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인류의 유형이란 것이 존재하니 말이다. (동물들에게도 유형은 존재한다.) 인류의 각종 유형은 딱 잘라 구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물학적이거나 동물학적이고 생리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문화적이다. 그리고 먹는 음식이나 교육, 성性 부여, 또는 노동, 조건, 역사에 의한 호명이라는 상수항에 기대에 유지된다. 그러나 한편 인류의 제반 유형은 무한한 개별적 분화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그 무한한 개별적 분화를 대가로 치르며 자신들의 유형학을 각인한다. 우리는 어디서 개별성이 시작되며 어디서 유형이 끝나는지 결코 말할 수 없다.
50. 개인적인 유형이든 집단적인 유형이든, 반인종주의의 필요성은 필연적으로 유형에 대한 거부를 낳는다. 오늘날 우리는 기꺼이 그 거부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그 필연성은 가련할 수밖에 없으니,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한 가족 특유의 닮은 분위기, 모호하지만 끈질긴 유사성, 요컨대 유전이나 유행, 사회적 환경, 나이 등이 빚어낸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혼합의 결과들을 (각 개인의 비교 불가능성이 한층 더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떠오르게 되는 것은 바로 그 혼합의 한복판에 서다) 지워버리도록 강효하기 때문이다.
51. 미인점. 피부 위에 아주 살짝 돌출되어 간간이 (어떤 이의 경우에는 빈번히) 포인트나 마크, 표징 노릇을 하는 갈색이나 검은색의 입자들을 프랑스어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이러한 입자들은 피부에 얼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흰색이 더욱 뚜렷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한다 - 적어도 눈과 젖이 여인들의 피부에 비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유비물이라 여겼던 시대의 사람들은 즐겨 그렇게 말하였다. 따라서 그 시대의 여인들은 이 밸벳으로 민든 '파리'를 필요에 따라 때로는 뺨에, 가슴에 붙이곤 했다. 그보다 더 갈색 빛이 도는 가무잡잡하거나 구릿빛 피부를 좋아하는 오늘날에도 미인점은 여전히 저만의 매력을 간직한다. 그것은 피부를 강조해주고 피부의 확장에 측량표를 세워 그 윤곽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는 이의 시선을 인도하며 일종의 욕망의 지표처럼 작용한다. 조금 더 욕심 부려 표현하자면 미인점은 욕망의 싹이자 강도의 아주 미소한 융기이고, 젖꼭지가 그런 것처럼 그 짙은 색깔 안에 몸 전체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미립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52. 몸은 경련을 통해, 위축과 이완의 교차에 의해, 주름과 주름의 펼쳐짐에 의해, 묶기와 풀기, 비틀기, 들썩거림, 딸꾹질, 급속한 방출, 다시 이완과 위축, 소스라침, 요동, 진동, 소름, 발기, 욕지기, 펄떡임에 의해 작동한다. 솟아오르는 몸, 아래로 꺼지는 몸, 움푹 파이는 몸, 살갗이 벗겨져 나가거나 구멍이 뚫리는 몸, 흩어지고 지대가 되고 분출하고 곪고 피 흘리는 몸, 젖거나 건조하거나 고름이 나거나 으르렁대거나 신음하거나 헐떡이거나 기력을 잃거나 한숨을 쉬는 몸.
53. 의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몸은 영혼의 자가 면역성을 생산한다. 다시 말해 영혼의 저 자체에 대항하도록 하고, 그것이 송두리째 저 자신의 내적인 영성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방어해준다. 몸에 의해 영혼 안에 영혼 저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야기되는 것이다.
54. 몸. 그리고 살갗. 그 나머지는 전부 해부학이나 생리학 또는 의학차원의 문학이다. 근육, 힘줄, 신경과 뼈, 체액, 샘과 장기들은 인지적 허구, 또는 기능주의에 입각한 형식주의에 속한다. 진실은 살갗이다. 진실은 살갗 속에 있으며 살갗을 이룬다. 꾸루룩 소리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찬 '안'을 감싸는 동시에 전적으로 바깥을 향하여 노출된, 진정으로 확장된 것. 살갗은 접촉하고 접촉된다. 살갗은 쓰다듬고 어루만지거나, 상처 입고 쓸리고 긁힌다. 살갗은 곧잘 자극을 받거나 흥분한다. 또는 태양과 추위와 열기, 바람, 비를 받아들이고 주름과 점, 사마귀, 찰과상 따위의 안의 흔적들이나 바깥의 징표들 ( 때때로 그것들은 안의 흔적과 동일한 것들이다), 나아가 균열이나 상처, 화상, 자상들을 아로새긴다.
55. 다형적 모순어법oxymore polymorphe인 몸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안/밖, 물질/형태, 동질성/이질성, 자치/타치, 생장/혹, 내 것임/아무것도 아님......
56. 징표가 되는 몸. 거기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가 몸을 숨긴 채 발가락 끝만 내보이고 있다. 어떤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물인지 혹은 기호인지, 어떤 원인인지 아니면 결과인지, 아무튼 거기에 '거기'라는 또는 '저기'라는 어떤 방식이 존재한다. 아주 가까이서, 혹은 적당히 멀리서......
57. 접촉되는 몸, 접촉하는 몸, 부서지기 십상이고 상처받기 쉽고 항상 변하고 도주하고 포착되지 않는 몸, 부드러운 애무나 구타 아래로 사라져버리는 몸, 껍질 없는 몸, 우리의 그림자가 부유하는 동굴 위로 펼쳐진 애처로운 살갗.......
58. 어째서 쉰여덟 개의 징표들인가? 왜냐하면 5+8=몸의 주요 구성 요소, 즉 두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에 몸의 여덟 가지 부위, 즉 등, 배, 두개골, 얼굴, 엉덩이, 성기, 항문, 목구멍을 더한 수이므로, 또는 5+8=13이고, 13은 1&3인즉, 1은 일치(하나의 몸)에 해당하고 3은 몸의 물질과 영혼과 정신 사이에서 순환하고 분활하며 촉발되는 끊임없는 동요와 변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또는 타로 카드의 열세번째 비밀은 죽음을 가리키며, 죽음은 몸을 진흙과 화학주기, 그리고 열과 별의 섬광으로 이루어진 결코 소진되지 않는 범 우주적 몸과 합체시키기 때문에......
59. 따라서 잉여적이고 초과적인 쉰아홉번째 징표가 나타나니, 그것은 바로 성le sexuel이다. 몸들은 성을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종류의 옷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유니섹스'에 해당하는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의 몸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성이기도 하다. 유방이 그렇고 음경이나음문, 고환과 난소, 그 외 골상이나 형태학적, 생리학적 특징이 그렇고 염색체의 유형이 그러하다. 몸은 그 본질상 성을 지니는 것이다. 이 본질이 다른 본질에 대한 관계의 본질로서 규정될 수 있다. 몸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관계로서, 또는 관계 내에서 규정된다. 몸은 다른 성을 가진 몸과 관련된다. 섹스를 통해 스스로의 경계에 접촉하는 것으로서의 몸의 육체성이 이 관계의 핵심이다. 몸의 육체성은 즐긴다. 바꿔 말하면 몸은 저 자신의 바깥에서 요동한다. 몸의 각 지대는 저 스스로를 위해 즐기는 가운데 바깥을 향해 동일한 섬광을 방출한다. 그것의 이름이 영혼이다. 그러나 좀더 자주 그것은 경련이나 흐느낌, 탄식으로 잔류한다. 찰나의 시간에 유한과 무한이 그렇듯 교차되고 교환된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성은 각기 유한의, 혹은 무한의 자리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