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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20. 2020

11월은 얼마나 커다란 우주인가



   11월은 선홍이 태어나는 우주이다. 퇴색하는 나무에 선홍의 우주이다. 담쟁이의 핏빛 잎새는 내 거주지를 심연의 시간에 휩싸이게 한다. 11월은 존재가 혼자서 휘청거리는 우주이다. 뼈대를 가진 존재들이 백만 살의 나이를 먹는 우주이다. 먼 산은 더 먼 산으로 밀려나는 우주이다. 석조건물의 조각상의 얼굴이 바래지고 빛나던 석탑의 층계가 무너지는 우주이다. 달의 결도 흐리고, 호숫가 산책자의 걸음에도 공중부양 같은 환영의 우주이다. 새로운 결과를 얻어낸 봄과 여름은 죽었다. 그 죽음이 충분하다 싶으면 11월의 우주가 찾아온다. 나무상자에 사과를 담은 노파가 농협 앞에 쭈그리는 우주이다. 사과는 반짝이고 노인의 피부는 푸석해진다. 물기 없는 나뭇잎 들의 하엽. 신작로여 면한 들판은 황금빛을 거두고 질퍽한 뻘의 논바닥을 드러낼 때, 나는 기도로 그를 살고, 언어로 사물을 살고. 침묵으로 무위를 살고, 휘파람으로 고양이를 산다. 그뿐인가. 낙엽이 구르면 구르는 낙엽으로 살고, 낙과의 썩은 부위가 보이면 썩어가는 과육의 아픔으로 산다. 이웃의 노인들은 여전히 그들 산책길을 찾아 걸어 들어가 어둑해지지는 우주. 그것이 11월의 우주-살이다. 낡아지는 것, 퇴색하는 것. 무위에 닿는 것. 11월에는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 빈 노트의 기다림. 먼지의 책상에 쌓인 생각의 덩어리. 동네를 떠나고 싶은 충동. 여름에 살았다는 증거 없이 뻣뻣해진 꽃대궁의 스러짐. 어디로 주소를 옮기고 종적 묘연해질 우주는 없는가. 시대를 거슬러 살아도 보았고 시대를 앞질러 달려도 보았다면, 무위를 살면서 '너'와 '그'와 '그것'에게 마음을 향하는 우주. 11월 물걸레로 빈 방을 닦으며 무릎걸음을 걸을 때 마음에 차는 어떤 색채와 음률과 발음의 시 같은 우주. 태어나지 않은 채로 11월은 없는가. 태어나지 않고 사는 11월의 우주일 순 없는가. 지금은 현자들의 우주가 아니어서 현자가 살아내는 11월이 아니어서 나는 어디서 구하나 11월의 언어. 존재가 위태롭고 존재가 휘청거리는 11월. 산더미의 택배 상자를 나르는 하룻밤 오만 보의 우주. 무엇을 구하려는지 너무나 명백한 삶의 현장에서 11월의 우주는 부조리하고 가혹하고 체중이 빠지는 우주. 고양이가 금속성 울음을 토하고 선 제 울음 번져가는 빈 들 쪽으로 밤의 눈빛을 향하는 11월. 나는 그 우주 속으로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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