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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1. 2020

외투



  어느 새 이 외투도 내 몸을 살아내느라 힘에 부치는지 몹시 지쳐 보인다. 소맷자락은 늘어졌고 바람이 불면 어깨와 등으로 바람이 새어든다. 소맷자락에 두 팔을 집어넣고 새가 날개를 퍼덕이듯 어깨를 들썩거린다. 외투는 전에 없이 가볍고 싱겁다. 몹시도 여윈 한 마리 물새처럼 내 몸에 걸쳐지는 외투. 더는 입을 수 없는 외투를 그렇다고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겠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외투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을 살아내느라 지쳐버린 외투를 벗어놓는다. 십여 년을 보내는 사이 내 몸에서 추레하게 늙어버린 외투를 바라본다. 아직은 번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내 몸에 걸치기만 내 몸은 이 외투가 몹시도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흐르는 물에 발목 담근 채 오랫동안 강물 내려다보던 물새가 푹 고꾸라져 강물에 쓸려가는 물새 같은 외투. 커다란 날개가 물에 젖은 채 하구로 떠내려가는 물새.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어느 날 내가 이유 없이 아팠던 날이 있었다. 이유 없이 아팠던 이유가 외투 때문이었던 것을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내 생은 어떻게 바래질까 한번 생각해봤어야 했다. 무엇으로 바래질지, 어떤 색으로 바래질지 생각했어야 했다. 바래진다는 것. 그것 참 괜찮은 시간이다. 바래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추레하고 힘없이 바래진다는 것을 알아채는 시간. 바람 몹시 부는 날을 택해야겠다. 햇살은 맑고 바람이 한 없이 부는 날을 택해야겠다. 그날 외투를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걸쳐두고 나는 외출을 갈 것이다. 시골만 찾아다니는 버스를 타고 하루를 낭비하고 돌아올 것이다. 내 생의 일부를 위로하면서 하루를 낭비하고 돌아오면 빨랫줄의 외투는 바람을 타고 어디 멀리로 날아가고 없을 것이다. 나의 체취와 나의 이야기를 껴안고 날아갔을 것이다. 나는 낙엽이 쓸려가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잠깐 허공을 응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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