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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1. 2020

칠 벗겨진 식탁



  의성식당 추어탕이 생각나서 청도에 간다. 한여름 뙤약볕을 뚫고 뜨거운 국물 마시러 간다. 부산이나 울산에서 왔다는 이들 줄 서서 기다린다. 탁자에는 뜨거운 뚝배기 놓인 자리마다 둥그런 상처가 나 있다. 물행주가 탁자를 훔치고 나면, 검은 탁자 위로 둥그런 달 모양이 떠오른다. 나는 사실 이 흔적을 보러 여기 온 것이다. 환하게 내 이마를 비추는 월광이다. 밤의 해바라기와 얼굴을 마주한 느낌. 어둑신한 실내에는 헉헉거리며 뜨거운 국물 떠먹는 소리 가득하다. 그런 몸들에게는 아무런 괴로움도 없어 보인다. 갑자기 국물 떠먹는 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사람들은 각자의 고통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고추씨 가라앉은 뚝배기의 밑바닥까지 비우고 나와 한길 걷는다. 뜨거운 것 먹고 걸을 때 발바닥에 전해지는 세상의 맛. 공중에 붕 뜬것 같은 몸. 고요한 세상에 괜히 시끄럽게 걷는 듯 한 느낌. 뚝배기 놓였던 칠 벗겨진 식탁의 누런 빛깔의 생으로 나는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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