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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1. 2020

보사노바

  



  맑은 가을 햇살이 들판에 쏟아지는 것처럼 라디오에서 보사노바 음악이 들린다. 간드러지고 걱정이 없고, 하늘거리는 머플러 같은 리듬 보사노바. 내 귀에 따뜻하고 풍부한 가을 햇살 같이 들리는 보사노바. 하지만 나는 보사노바를 싫어한다. 오래전부터 보사노바에 대해 정을 붙여 보고자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말걸 수 없는 불편한 사람처럼. 보사노바는 내게 너무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다. 보사노바 리듬에는 걱정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보사노바는 즐거움과 발랄함만 가득하고 싱싱하다. 보사노바에는 맑은 햇살만 가득하다. 보사노바는 그러므로 유희를 아는 이들의 음악이다. 마음이 싱싱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나는 보사노바를 꺼려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보사노바는 오히려 나를 거북하게 한다. 나는 적극적으로 보사노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차라리 즐길 줄 모른다. 나는 너무 차분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무거운 것에 길들여져 있다. 어둡고 침침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가볍고 경쾌한 것을 진정으로 즐길 줄 모르면서, 가볍고 경쾌한 것에 대해 경박하다고 치부했다. 나는 보사노바의 세계에는 절대로 여행을 할 수 없다. 보사노바는 잘 마른 빨래의 감촉이다. 빨랫줄에 펄럭거리는 옷감들이다. 잘 마른 옷감을 만질 때의 느낌 같은 보사노바. 하지만 왜 나는 보사노바를 긍정하지 못할까. 보사노바는 여유와 낭만이 있어야 한다. 즉 내 마음이 여유와 낭만이 스며들게 빈틈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사노바는 잘 마른, 감촉이 좋은 순면 티셔츠 같이 나와 가까워 질 수 있다.

   소풍가기 전날의 기쁨에 들뜬 소녀의 마음이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걸어오면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허리가 고꾸라지도록 웃음을 틀어막고 걸어오고 있다. 저 혼자 킥킥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웃음이 바깥으로 터져 나가지 않게 꽉 틀어막고 있다. 얼굴에 붉은 혈기가 오르도록 힘껏 웃음을 틀어막고 있다. 궁금하다. 나도 한때 저런 웃음을 참고 거리에서 허리가 꺾어진 적 있었지. 내 앞을 지나간 아이의 손을 살짝 젖히면 우울한 상점들의 거리에 보사노바 리듬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보사노바는 만화적인 환상의 세계이며, 걱정과 고민을 던져버려야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 시절이지만, 가을 어느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보사노바리듬처럼 우리 스스로를, 삶의 감옥에서 탈옥시키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보사노바 음악 몇 곡 들으며, 생의 일부를 긍정해 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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