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다하우어 수트라쎄
전쟁. 그것은 비단 인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 이후의 세계, 여전히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인간 이후의 세계
나무와 하늘 뿌리와 땅이 파괴되는 것이 전쟁이다.
인간 혐오의 입장에 본다면 이 생물들은 다만 파괴하고 살해하는 종일 따름이다.
그럴 바엔 왜 태어났을까. 이것은 전쟁의 화염에 뿌옇게 변해버린 하늘의 입장일 수 있다.
나무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잔해로 껍질이 벗겨진 채 널브러져 있으며
살아 있는 나무들은 절규하는 인간의 포즈를 보여주고 있다.
저 나무에 새싹이 나고 잔가지에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씨앗이 날 때까지의 세월!
그 세월이면 인간은 도덕을 회복하고 인간애를 발휘하고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도 바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관용과 이해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
나무들의 사체 위에서 대지는 생명의 윤리를 망각하고 있다.
거기 무릎 꿇는 인류. 먼저 대지에 무릎 꿇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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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ty Transport
by Wilhelm Dachauer. Schloss Belvedere, Vie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