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 Eitel : 독일 출생
용도 폐기해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썩어 문드러지면서 떠나지 않는 유믜미에 대한 집착. 그것에 매달려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끝없이 의미에 매달리고, 당대의 가치에 가두어버린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8-90년대는 조깅이 대유행했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는 인간.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는 인간은 시대를 앞서가는 인간 , 성실하게 체제에 복종하는 인간이었다. 조깅은 사회체제에서 생산된 가치관이다. 그리고 세계화의 시대에 접한 후 대량실업 상태가 벌어지는 시대에는 돌연 사람들은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한다.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 걷기에 좋은 코스가 생기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걷기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적 걷기 열풍의 이념엔 <나도 함께 거기에> 같이 걷기를 하는 교양인의 척도에 매달린 것에 불과하다. 걷기 위해서는 좋은 신발을 신고, 먼 곳에 가서 걸어야 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사진으로 남기는 걷기. 이러한 이면에는 성실하게 달리고 살아도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의 상실감이 숨어 있다. 그럴 때 개인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바로 멈추는 것이다.
돌연 찾아오는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존재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젠 걷기의 시대도 끝이 났다. 걸어봤자. 별 다른 대책이 없다. 그러면 멈추게 되고 주저앉게 된다. 그리곤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선불교의 <선>의 개념과 같다. 침묵과 정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실패와 절망, 거대한 체제 복종의 시템에서 놀아난 후에 깨닫게 <정지>일 뿐이다. 본래 회귀, 되돌아감은 없다. 무의미와 무의미의 결합. 그 끝없는 지연..... 그것이 우리의 실존 방식이다. < -으로 살아야 한다> 가 아니라, 살아야 한다고 하는 순간에 또 다른 물음으로 종지부에서 달아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