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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Aug 15. 2021

여름 폭풍

윈슬로우 호머

 Winslow Homer - Williamstown - Clark Art Institute - Summer Squall (1904) (61,6 x 76,8 cm)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 파도 속으로 알몸으로 뛰어가는 생. 온전히 자연에 의지해서 사는 생. 바다에 피부를 주고, 파도에 호흡을 주고, 물결에 관능을 배우며, 물빛에 눈이 멀고, 소금 맛의 애인을 만나는 바닷가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 바다의 언어로 문장을 쓰는 거. 광활한 공포와 잡히지 않는 서정. 태양을 미치게 하고 빈 배를 취하게 하고, 어부들의 얼굴이 물고기를 닮아가는 바닷가의 생.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 금속이나 바위의 질감을 모르고 나무의 질감이나 그늘의 농도는 모르지만, 바다의 질감과 감정을 낮술에 취했어도 읽어내는 어부. 바다의 심경을 읽어, 어떤 날은 바다로부터 도망을 쳐야 하는 어부. 세월을 견디는 일이 오로지 바다 앞에서만 가능한 어부. 그물을 깁고 비린 물고기 사체를 바다에 던질 때마다 손바닥에 살의를 느끼는 어부. 먼 데서 폭풍이 오면 바다로부터 날아나 바다의 여운이 없는 곳에서 며칠을 묵어야 하는 어부. 오류 투썽이인 바다를 용납하는 어부. 이웃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가는 폭풍의 바다. 때로는 바닷의 뱃속까지 들어가 자기를 묻어야 하는 어부. 바닷속에 자기의 무덤을 보아버리는 어부. 그 어부의 아들이 어린 조막손으로 바다를 만지면 멀찌기 바다는 어부의 아들로부터 멀어졌다가 푸르고 싱싱한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되돌아와 소금기 베인 손을 내미는 바다. 어린 조막손을 잡아줄 때 어부의 아들이 알아채는 바다의 내밀성. 어머니의 뱃속에 아버지의 바다를 알아버린 내밀성. 필생으로 만나고 부딪쳐야 하는 금속 덩어리 같은 완강하고 고집에 센 바다. 뼈를 주고 노래를 주고 춤을 보여주면 그에 응답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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