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한 송이와 물 한 잔의 나날

by 일뤼미나시옹


장미 한 송이와 물 한 잔의 나날

-김정용



길가에 붙들려 길들여지는 매연에 가로수는 나무가 아니라 학대받는 짐승들이다.


몸뚱이를 던져버린 옥상 위의 구두는 급전직하를 견디는 종[種]이다


철길로부터 십 여리

고요를 찾아와 고요 안에다 쏟아내는 한숨 열차


있어야 할 곳에 꼭 있는 꽃과 부패

있어야 할 곳에 꼭 찾아오는 부패와 꽃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서면 왜 한숨이 나오지


내가 본 풍향계들은 모두 땅을 향하고 있었어. 등줄기가 서늘한 방향을 가진 이들만 보게 되는 땅을 향한 풍항계는 총에 맞은 어린 새였던가


욕지기하듯 불어버린 민들레 홀씨 또 욕 들으려고 마당에 피고 있다


이부자리에 똥 무더기 내지르고 죽은 아버지 이야기는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한다. 나도 그렇게 갈 것이다.


달려가서 샛노란 프리지아를 사라, 그리고 화요일을 함께 죽어라, 곁에서 함께 죽을힘을 느껴라.


사랑에게 말하라, 나는 너를 사유해.


저녁 해에게 들어가 뜨거운 혼탕을 함께 하는 서늘한 몸을 가진 나, 혼탕이 끝나고 해에게서 빠져나오면 바람은 나를 뜨거운 숯덩이처럼 불어줄 것이다. 식지 말라, 식지 말라, 해를 사랑하는 시인이면 식지 말라.


돌을 만져주어라, 부드럽게 열리지 않느냐, 네 손에 부드러운 빛을 주지 않느냐, 네 안에 부드러운 발음을 주는 까칠한 혀가 아니냐, 과자처럼 너에게 안기지 않느냐, 돌을 만져주어라, 날개가 식어있지 않느냐. 데워주고 날아가게 해 주어라.


물 한 잔을 마셔라, 그러면 장미 한 송이가 필 것이다. 장미 한 송이를 피워라, 그러면 먼 데 아이가 물 한 잔을 마시고 꽃나무가 될 것이다.

keyword
일뤼미나시옹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예술가 프로필
팔로워 3,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