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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19. 2021

하얀 도화지, 파란 하늘에


하얀 도화지, 파란 하늘에

 -김정용


가을을 버린 은사시나무가 서 있다

실패한 은사시나무 그림을 품고 아이가 자랐다


결말을 알아버린 나이 여덟 살

그 때 돌멩이 던지는 법을 알았다


결말을 알아버린 드라마를 다시 보는

토요일 오후처럼

하얀 도화지에 하늘이 파랬다


결말을 알아버린 드라마를 또 보는

토요일 오후의 지루함처럼

하얀 도화지에 하늘이 또 파랬다


색깔이 흘러와 눈을 가득 채웠지만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없는 여덟 살

결말이 나버린 나무 밑에 아이가 웅크려 있다


덜 자란 아이가 애늙이를 겪는 

하얀 도화지 파란 하늘을 겪었다


시퍼렇게 눈을 뜨고 죽은 송아지를 그리고 아이가 자랐다

하얀 도화지, 파란 하늘이 제초제 냄새를 맡았다

하얀 도화지에, 파란 하늘

갓 여덟에  여든 아홉의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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