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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14. 2021

떨면서


   떨면서 

    - 김정용


   떨면서 나무와 숲의 진보를 따라갔지 떨면서 하늘 가운데 검은 구둣발을 보았지 떨면서 풀을 찾는 흑염소 무리를 쫓았지 떨면서 낡아가면서 새가 되어가는 신발을 끌었지 떨면서 구름은 구름의 구릉을 찾아갔지 멀건 하늘에 햇살이 싱거워서 떨었지 떨면 학의 곧은 다리가 뚝뚝 부러졌지 떨면서 풍선껌을 씹는 분개한 촌로들이 보고 싶었지 호시절을 어데서 탕진하고 돌아온 그 먼 여행의 나무 들을 찾아갔지 떨면서 가는 등줄기로 만리 밖에서 찾아온 물새들을 반겼지 떨면서 수면의 풍문을 기록했지 딱딱 이빨을 부딪혔지 등줄기 도드라진 척추뼈의 유기견이 발치로 달려왔지 떨어주니까 알아주니까 들어주었지 넌 기록 대신 들어주러 왔지 나뭇잎에 겨우겨우 붙어먹은 벌레 흔적이었지 떨면서 신발에 쇳물을 부었지 떨면서 삼월을 찾아갔지 비산 공단 초입의 개나리 울타리를 떨면서 관통했지 개나리가 개나리를 아파했지 떨면서 꿈의 네 눈썹을 긁어주었지 너를 기록하는 밑줄 대신 눈썹을 긁어주었지 떨면서 색맹의 달에게 조안 미첼을 보여주었지 공동묘지 외할머니 진흙묘를 파헤쳤지 얼굴도 모르는 외할머니야 이 자리에 싹 밀고 소방서 들어선다고 하네요 떨면서 대승기신론 무덤덤 독파하기 전에 무덤에 갈 수 없지 떨면서 휘어진 갈대 곁에 갔지 기댔지 유일한 불안식처를 찾아냈지 떨면서 송곳니를 드러낸 야생 두개골을 작대기로 톡톡 덜러붙은 눈발을 털어주었지 눈발이 자기의 공중을 떨면서 눈발이 서로를 부여잡을 손목뎅이 없이 서로의 멱살을 끌어당겼지 떨면서 변두리 공장에서 이 십 년 쇳물 베인 작업화를 끌었지 밑창이 새가 되는 날까지 떨면서 수족냉증의 밤을 떨면서 촛불을 켜 두었지 떠는 불꽃이 떠는 불꽃을 더듬는 밤의 내막에 너를 떨면서 시퍼런 보리싹을 얹은 맨밥을 빈 들처럼 먹었지 떨면서 외벽 들창 아래 심었던 작대기 같았던 벚나무 중년이 되어 있었지 떨면서 왜 잊지 못할까 내 장례의 봄을 네가 만들려나 떨면서 구례에 갔지 '구례'라고 발음하고 나서 구례에 닿아보고 싶었지 거기 돌이 어디서 다들 출발했는지 떨면서 굴러온 돌멩이를 보았지 흙발을 하고 움트기 시작하는 파리한 기록을 진흙의 빗줄기에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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