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뤼미나시옹 Dec 16. 2021

그물망에 빗줄기


 그물망에 빗줄기 

  - 김정용


 숫자의 거리에서 쫓겨나자 흠결 없는 선상의 배열에서 쫓겨나자 가지런히 짐승의 뼈다귀를 진열해 둔 접시를 깨트리자 현창에 갇힌 고유한 풍경을 일그러트리자 비밀의 언어는 그물에 걸어두어라 증발하는 돌의 채색은 다시 오게 그늘에 두어라 누구라도 달에게 그물을 못 던지게 하자 달빛을 만들었던 신열의 달에게 입술을 녹여주자 숫자의 거리에 작명이나 운수대통 신통 방기의 전력을 털어내자 인공의 주인은 숫자의 참에서만 주인이 되게 하자 울먹거리는 창문을 가지고 새들의 고향이 되자 별에게 다가가는 장미를 키우자 장미의 입술을 찾아 나서자 숫자의 거리에서 다시 한번 쫓겨나자 발등의 서릿발을 가지고 산봉우리에 푸른 심연을 마시자 도형의 종교에서 쫓겨나자 사막의 기도는 사막에서만 발음하자 끈적한 겨우살이를 계획하자 무자비의 사막에서 채색의 입술을 피우자 알코올과 향정신성의 선율에서 피어나는 나비를 키우자 숫자의 터널에서 포도주 마개를 터트려 달의 출구를 뚫자 빗줄기의 그물망에 얼굴이 갇히자 이마에 흘러내리는 덧칠을 허용하자 색정에 들어도 무색정에 겨워도 꽃의 정황은 나비의 길목이다 빗줄기 속으로 달려가는 개의 꼬리로 열쇠를 삼자 무작위 연주법을 익히 피아노를 방목하자 아직도 갇힌 노래가 가슴께에 걸려 뼈다귀처럼 덜커덕거리는 피아노를 방목하자 달아났으니 더 달아나자 걸어갈 수 없는 발목이 될 때까지 달아나는 계절을 찾아가자 그물에 갇힌 물고기의 수난기를 물에게 읽어주자 텅 빈 바다를 만든 고래족의 전설을 찾아가자 



작가의 이전글 떨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