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뤼미나시옹 Jan 15. 2022

번아웃

 

번아웃

 - 김정용



 해의 지루하고 느린 흐름 따라 무릎걸음을 했지

 초콜릿을 쌓아놓고 선물로 쓸까 먹어치울까

 흐림 사이에 낀 청테이프 같은 하늘을 떼어내야겠어

 바람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돌멩이를 따라가야겠어

 누아르 음악으로 점심 준비를 차렸어

 검은 치장으로 순백을 가려두면 사람들은 금방 알아 채

 휘발유를 태우고 안정을 찾아야겠다 

 마을회관 사이렌을 개들이 따라 울부짖는 이명증에 동참하는 중이야

 초우량 나무의 데이터를 나무 아래에서 복제하고

 수벌은 독침도 없고 꿀도 못 따니까 쫓겨나기라도 하지 암벌은 너무 먼 곳의 꽃을 찾아야 하고

 집을 떠나 빈 방을 찾는 여행이라니까

 신발을 새 것으로 바꾸려 하면 우선적으로 몰아치는 상품의 순서가 한 둘이 아니라서

 조수석에 앉아 후방거울 속 춤추는 억새들의 메마른 부드러움을 슬퍼하였다

 작은 배낭을 등에 지고 빈 것에 가벼움을 느끼자

 걸어둔 외투에 강박증일까 성공사례 책에 시달릴까

 빈들의 발자국들은 달아난 흔적입니다

 악역의 주인공이 잡히지 않는 영화 시리즈나 연속극은 왜 없는가

 수치와 통계와 실용성의 냇물을 읽었던 빗속이라니깐요

 폭식과 거식의 거울을 번갈아봅니다 

 오백 년 수령 당산나무에 물 한 잔과 경배를 하는 살풀이

 내가 바라보는 하늘을 해석해주는 물거울에게도 경배를

 나를 당신 언어로 상담하신다고요?

 나는 언제나 적절하지 않습니다

 낮달이 개밥그릇처럼 깨끗하여 내 밝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며칠 흐리다 한 동안 연장하겠습니다 

 희고 파리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바탕화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