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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Jan 12. 2022

바탕화면


 바탕화면

  -김정용


 비싸게 입어라 까마귀처럼

 건들거려라 흑염소처럼

 금치장을 해라 역광의 샛강처럼

 잔뜩 먹어라 먹구슬 같은 포도송이로

 거절 없고 겸양 없는 햇살을

 여름을 키워라 겸양의 걸음을 버려라 엇박자로 치장하여라

 화병의 목이 마르면 꽃이 되어 꽂혀라

 환유의 휘발유를 끼얹어라

 비싸게 입었으면 물 안의 돌처럼 걸어라

 제단을 숭배하는 눈 밝은 책은 덮어라

 은유의 무게를 감당하라

 일 년 치 은유의 언어를 하룻밤에 살아라

 에게해를 찾아라  

 모래벌판에 네 그늘을 주어라

 햇살의 방향으로 노후된 가슴을 펼쳐라

 결박을 푼 물결이 물결을 밀고 오는 것을 보아라

 소음 많은 라이브 공연에 집착하라

 뭇사람들의 깊이를 헤아려낸 비닐 의자에 앉아라

 당신을 사랑하는 세 가지 메모를

  냄새 풍기는 몸이란  거울에 보여라

 시를 위해 휴일의 다음날까지 뜬 눈으로 있어라

 당신이 모르는 사랑이 있어서 미친 다는 걸 직감해라

 달리 별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이러는 거라고 가끔 생각하라

 작은 컵라면에 물을 붓고 계란 후라 개를 먹는 점심이 잦아라

 고양이 이름을 부르고 문에 틈을 주고 흙발이 찍은 모양을 며칠 두어라

 살짝만 살고 간다는 걸, 풀잎 결에 왔다 살고 있다는 걸, 슬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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