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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by 일뤼미나시옹



우리 사이

- 김정용



우리 사이 흐림의 주파수를 더듬는 라디오

낙타와 초승달의 주파수를 더듬는 라디오


꽃이나 달

우리 사이 뉘앙스로

꽃이나 달


우리 사이 기러기

날고 광인의 혼잣말을 쏘아 올리는 배롱나무

모래가 서걱거리는 뉘앙스


우리 사이 흐림은 은은했고

사슴벌레의 오작동은 오후 내내


우리 사이

모든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불멸적 기다림을 켜놓은 간이역


우리 사이 지퍼가 없는 구름의 우울


우리 사이 낮에도 모퉁이를 밝히는 백열등의 간헐적 뉘앙스

우리 사이 북벽 그늘의 오작동이 드러낸 발가락을 오므린 죽은 새


우리 사이 구름의 구름이 구름의 굴레를 모르는 구름


우리 사이 싱크대 안 잊혀진 감자의 파리한 희망사항

우리 사이 꽃병이 꽃을 던져버리는 낮 꿈


우리는 뉘앙스

간헐적 주파수 속에 사이를 더듬는 뉘앙스

사슴벌레가 사슴벌레를 찾아가는

불멸적 뉘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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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뤼미나시옹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예술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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