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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Jan 25. 2022

두고 봅시다


두고 봅시다

-김정용



 허기의 그늘이 와서 살찌우고 가는 정원을


 물가에 휴식이 부식의 순서가 되어버린 걸


 뇌우가 치는 순간 나무의 진부함이 추상으로 일그러지는 동안을


 소금을 먹고 깨금발을 뛰었던 꿈에서 빠져나와 피면서 늙는 민들레의 봄을

 

 공장 옆의 냇물과 냇물을 따라가지 못하는 허기의 백로를

 한꺼번에 자살하듯 추락하는 백목련을


 잔 돌멩이를 쌓는 겨울 움막살이는 도피성 자학인지 돌 괴롭힘인지를


 빗줄기에 돌멩이가 한 핏줄인가를


 아버지를 찾아 떠난 딸의 이야기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두고 보겠지만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딸의 딸 이야기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다섯 음계를 치고 한 번의 추락을

 다섯 음계를 내리고 한 번 더 깊은 추락을


 새였다가 여인과 아파트의 기하학으로 피는 달빛에 겨운 꽃을


 숲으로 도망쳐온 나무들과 숲으로 달아나지 못하는 나무들을


 갈대가 갈대를 밀어내는 과밀의 가을 동안 기필코 결가부좌를 트는 갈대를


 정물화를 걸어놓으면 오지 않던 햇살이 들어차는 걸

 유리병에 살고 그릇이 달그락거리고 꽃이 시드는 걸


해바라기 그림을 걸면 돈 들어온다고 하는데

고흐의 해바라기를 권하면 그냥 해바라기 사진이라니깐요


나는 새의 상형문자가 나를 점쳐주는 걸


빛의 실내가 내가 비워진 줄 알고 나를 수소문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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