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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Jan 30. 2022

두 걸음 물러난다

 


 두 걸음 물러난다

 - 김정용


 살기 어린 형형한 눈을 하고 요술 고개에 나타난 사냥꾼. 옆에 마누라까지 살기 서린 눈을 하고 있나 했더니, 안고 있는 어린 강아지까지 어금니를 드러내며 가레 끓는 소리를 낸다. 두 걸음 물러난다. 다시 한 걸음 더. 그리 좋은가, 총을 쏘고 짐승을 쫓아가게 개를 풀어놓으면, 개들이 물어뜯은 얼굴에 어린 공포와 동공 보고 나면, 득의양양. 잡았다 이건가. 명중했다 이건가.


 두 걸음 물러난다

 뒷걸음도 없이 죽었을 초식동물들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박는다

 흐느낀다. 피아노로 흐느낀다.

 선율.속에.어긋나버린 뼛조각


 숲 길의 끝에 닿는 산책. 물소리 하 맑아 발목 담그러 비탈길 내려갔을 때, 물 한 모금과 목숨을 바꾼 초식동물의 처박힌 뒷모습. 상처 입고 달아나며 갈증에 타는 목을 개울에 담그고 죽은 사체. 두 발 물러난다. 한 발 더 물러난다. 돌아선다. 새소리가 유리알처럼 맑은 개울 소리와 중첩이다.


 핸드폰을 꺼낸다. 음악을 찾는다

 막스 리히터. 피아노로 흐느낀다

 빠져나오는 도중에 풀썩 무릎이 꺾인다

 피아노로 꺾인다


 비단결 백로가 살점 없이 난다. 돌덩이 사이 개울물에 발목을 빼고 난다. 살 없는 날 것들의 가혹한 이동경로를 살았으면, 두 걸음 물러난다. 한 걸음 더. 벼랑으로 내달리면 날갯짓될까. 비단결 될까. 백로처럼 살을 빼자.


 봉분을 찾아가 기댄다. 햇살을 받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는다

 새가 되던가 짐승이 되던가 무릎 사이로 머리 박고

 그리 좋은가, 총 쏘고 살기 어린 눈을 하고선, 내리막에서 차가 후진한다는 요술 고개에서의 환 체험

 그리 좋은가, 개 짖을 때 아이구 우리 새끼! 으를 때,  두 발 물러나는 거 보니까.  근처에는 강보에 쌓인, 내다버린 개의 사체.


  머리를 어디다 박고 싶다. 영영 빼고 싶지 않다. 시퍼런 하늘에다 클클클, 흐느끼고 퉁퉁 불은 눈으로 밤의 항로를 두 걸음 물러난다.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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