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 II
- 김정용
들으면
가을까지 살았던 꽃이 자기를 바수는 중이지 않은가
너를 두고 돌아선 내 그림자의 몫을 더해주는 거 아닌가
범종은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밑바닥을 쓸어주는 나이가 아닌가
결정체에서 피륙에까지 한 울림이지 않은가
구리 궁전에 살면 구리 궁전에 녹슬지 않는가
치마폭에 감싸인 적 없는 하루가 아닌가
겨울의 메타세쿼이아 황갈색 불그레한 공기를 마시는 중이지 않은가
내가 경배할 때 너는 세상 밖이지 않은가
경청하는 눈으로 걸음이 없지 않은가
먼 산 보다 자빠질 녀석이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예언이지 않은가
무지갯빛 발을 젖히고 들어간 중국집 비닐의자에 앉아 비워지는 짜장그릇처럼 허겁지겁이지 않은가
웅얼웅얼 울어주는 새의 골목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밀기울이지 않은가
너를 거기 세워두고 등 돌린 해변의 사랑을 아직도 모르지 않는가
검은 건반 같은 눈을 깜빡이며 눈물 삭이며 지나갔던 소녀의 등이지 않은가
너를 거기 세워두고 세월 없었으면 했던 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