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셨다

by 일뤼미나시옹


적셨다

- 김정용



하늘을 적셨다.

하늘이 한됫박 물을 마시고 화색을 돋워 치자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머위는 돌의 순번 사이에 어리었다.

펼친 손은 한 장이었고 묶어 맨 머릿결은 태양과 신혼 중이었다.


휴식이 필요한 끝을 적셨다.

가지 끝, 끝자락, 끝단, 끝물, 끄달림, 살아낸 발등을 가진 말이었지만

발이 보이지 않았다.

증발이었다.


마당 귀퉁이에는 던져진 스텐 그릇 귀가 되어 있었다.

담 너머 먼 곳을 듣고 있었다.

낙숫물에는 홀짝홀짝 울었다.


적시면, 우산을 든 수국이 온다.

수국은 상한 꽃장수가 아니다.

수국은 두 개의 논란이 없는 무향심


젖은 사람의 소식은 퇴색이고

젖은 돌꽃은 구름의 방명록이다.


돌이 부석이다.

물을 먹어야 돌도 자리를 잡는다.

굴러온 먼 길이 잊힐 때까지 물을 적신다.


땅거미는 이미 와 있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내어놓을 물이 없다.

달아날 땐 급물살 속도로 사라진다,


물의 잔등도 부었다.

왜가리가 발을 뺐다.

어린 돌이 태어났다.

까무잡잡하고 비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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