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by 일뤼미나시옹


어쩌다, 간이역

-김정용



어쩌다, 간이역은 구르기를 멈춘, 마침내 둥글어진, 돌의 여행을 데리고 왔는가


어쩌다, 간이역은 늑대 울음이 들렸던 옛 떡갈나무 숲, 진달래 울음을 보고 있는가


어쩌다, 간이역은 나무벤치처럼 붙박여, 어린 나를 애늙은이로 만들었는가


어쩌다, 나는 간이역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기차가 오기 한 계절 먼저 벤치에 앉았던가


어쩌다, 간이역은 아침 해에서 저녁해까지 애늙은이의 삶 법을 익혔는가


설마, 가출한 뱃사공 딸을 실어주다 저녁 빛에 살가워진 것은 아니겠느냐

설마, 저녁 빛에 살갗을 태우고 있는 보리밭 기울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느냐

설마, 제초제 냄새가 나고 봄풀이 떼로 말라죽는 논두렁을 목도한 반감으로 등을 꺼고 무정차의 간이역이 되려는 것은 아니겠느냐


어쩌면, 어깨에 눈을 싣고 떠난 사람을 아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느냐

어쩌면, 여행을 떠난 모난 돌이 동그랗게 굴러와 여독의 어깨를 기대는 건 아니겠느냐


파란 잎 새 하나 물고 하모니카를 배우러 떠난 어린 나를 아직도 기다리는 건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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