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가에서

창가에서 - 혼잣말에 젖다

by 일뤼미나시옹

창가에서 - 혼잣말에 젖다


선풍기를 발가락을 끈다. 성소가 필요하다. 혼잣말이 하고 싶을 때는 무릎을 꿇는 성소. 혼잣말이지만 기도의 형식이 되는 성소. 무릎으로 일구는 정원이다. 그러나 정원은 난맥상에 빠졌다. 고양이가 숨어드는 나무그늘에 잡풀이 무성하다. 습기가 가시지 않아 나무들이 우울하다. 가지가 웃자라고 나무들의 키가 훌쩍 커버렸다. 잔가지 사이에도 빈 틈이 나야 잎들이 생선비늘처럼 빛이 난다. 비와 폭염이 두려웠던가 정원은, 주인에게 방치되어 있었다. 책상에 쌓아 둔 책을 핑계로 주인은 빛에 그을린 일상에서 달아나 그늘 속으로 뒷걸음쳤다. 대나무발을 쳤다. 몰염치와 어처구니의 정치가 안방까지 들어와 달그락거린다. 물주전가 끓으면서 내는 소리 같다. 귀를 틀어막을 수 없는 세상 소식이 일상의 틈을 내고 심난을 일으킨다. 부탄가스 네 개 한 묶음이 칠천이 넘어버린 영수증을 본다. '뒤로 물러나자' 세상을 이길 방법을 애초 몰랐지만 그런다고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지도 않는다. 다만 간간 뒤로 한 걸음씩 어쩌다 한 걸음씩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잊혔던 입맛이 돋는다. 채소의 맛이 달리 느껴진다. 공기의 맛도 그렇다. 그늘의 맛도 느낄 수 있다. 낮의 풀섶에 숨었던 풀벌레들이 밤에 울어주는 기다림을 위해 조심스럽게 정원을 정리한다. 흙에 무릎을 준다. 등에 햇살 타격을 받으면서 구름 그늘을 업어주면서 호미로 잔풀을 뽑고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고 모양을 낸다. 짙어버린 정원의 그늘을 한 겹 벗겨낸다. 혼잣말도 속엣말의 무게를 한 줌 덜어내는 말이다. 고양이가 빤히 바라본다. 한마디 건넨다. 깜짝거리는 눈망울에 부드러운 텔레파시가 있다. 돌멩이에 돌꽃이 돋아 있다. 기쁘다. 혼잣말을 들어준다. 잔가지를 치는 동안에 여름 나기 새들이 무거운 날개를 휘젓는다. 어딜 가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쫓겨나는 것 같다. 여름의 무게는 햇살의 무게이다. 빛으로 강해지는 동안 습기는 단단한 것들에게 무늬를 새겨준다. 거미줄이 쳐진 나뭇가지들 사이에 흰 실을 감은 채 죽은 벌레들은 해먹 위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잠든 듯하다. 작고 가는 풀줄기들이 씨앗을 빼곡히 매달고 있다. 뽑는다. 산포의 기도는 식물의 파종과 같다. 어린 풀들이지만 뽑아낼 때 자잘한 씨앗을 흩뿌리고 뽑힌다. 기약을 이미 해둔다. 내년에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나겠다는 기약이다. 혼잣말의 기도는 산포와 같다. 걸으면서 사물에 대한 예찬을 하는 것이 혼잣말이며 기도이다. '보십시오, 이 풀줄기들의 제때에 돋아내는 경의를'. 사물이나 자연에 대한 예찬은 내 언어의 예찬이 되기도 한다. 정원을 정리하는 중에 간간 땅에 무릎을 꿇으면 나무의 정령이 발음을 일으켜 내 혼잣말은 먼 산이 귀 기울이게 한다. 산은 내 혼잣말의 영감을 받아 바다가 남향으로 출렁거린다. 나는 그때 눈을 부시게 뜬다. 하늘에 대고 '너의 첫눈을 기다리고 있어'라고 혼잣말을 한다.


밀짚모자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투박한 소리가 난다. 밀짚모자에 빗물이 스민다. 봄의 부드러운 흙에 스며드는 채소의 씨앗 같다. 한 차례의 소나기가 정리가 덜 된 정원에 쏟아진다. 피하지 않는다. 비를 맞는다. 빗방울의 무게가 단단하고 차갑다. '너의 첫눈이 오고 있다.' 혼잣말을 되뇐다. 빗방울은 흙의 표면을 빗방울의 무게만큼 파고든다. 격랑이 한 차례 있었고 이윽고 내적인 긴장이 찾아오고 비에 젖은 몸은 흠뻑 젖은 물새처럼 멎는다. 새가 된 몸, 나무가 된 몸이다. 일상에 곁다리로 달라붙은 사소한 잔상들, 잔여들이 빗물에 씻겼다. 먼 데를 그리워한다. 시를 기다리는 언어의 갈애자. 밭농사를 하면서 세월을 가르는 이는 될 수 없지만 먼 데를 그리워하는 몽상가는 세월은 가를 수 있다. 웃자란 가지를 전지하고 대문 앞에 수북이 잡풀을 쟁여둔다. 생각의 덤불이 쌓인다. 옅은 식물의 그늘에 등을 맡기고 무릎을 꿇고 땅에 지극히 가깝게 얼굴을 하고 한 마리 짐승이 된다. 초식을 하는 짐승. 초식을 하는 짐승의 무릎을 한다. 대지에 무릎을 주고 책을 읽듯이 정원을 읽는다. 읽는다는 것에는 문장의 헤아림이 있다, '이 무릎걸음에 대해 너의 먼 곳은 어떤 초식동물이 사는지' 일말의 괴로움 없는 꽃이 한 송이 핀다. 흰 백합을 빼닮은 꽃은 특유의 여름 향기를 뿜고 있다. '아름다운 실격' '내 하루를 피웠으니 너의 첫눈이 내게 오길'


처서로 이주해 온 풀벌레들은 처서의 울음을 운다. 꼭 처서 즈음에 걸맞은 울음을 운다. 어깨에 달냄새가 베인다. 벌레들은 가을밤이 더 깊어지면 옅게 운다. 맨 처음의 출발처럼 운다. 달빛에 젖어 울음을 운다. 대물림의 울음을 바꾸지 않고 반드시 처서 즈음에 찾아와서 울어준다. 별을 빼닮은 울음을 밤하늘에 흩뿌리는 것이다. 처서에 우는 것. 고귀한 존재들의 대물림이다. 반면에 나는 물려줄 게 없을뿐더러, 새에게든 나무에게든 흰구름에게든 집 근처를 흘러가는 병든 냇물에게든...., 의미의 측면에서든 감각의 측면에서든 빈약한 시선이 전부이다. 생활에 빈자리에 훤하게 드러나는 처서 즈음의 풀벌레 울음에 기대어 돌연 내가 나를 놓아버리는 반작용이 있다. 내어놓을 언어가 빈약한 반증이다. 밤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깨어있다. 늦여름에 핀 보푸라기 같은 자운영처럼 깨어 있다. 풀벌레들에게 의지해서 밤의 일부를 미완의 문장으로 푼다. 미완성의 문장은 말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한 바탕 너의 첫눈이 오는 문장' 혼잣말은 말에도 이어진다. 정원의 밤은 숨죽인 채 움츠린 고양이로 명징해진다. '거기 너의 흐느낌이 있을 때 여기 나의 첫눈이 내린다.' 맨 발의 책상다리를 하고 혼잣말은 염주알 굴리듯 계속 되뇐다. '내게는 첫눈이 없구나, 너의 첫눈이 오기까지' 풀벌레들은 시간을 가지고 왔다.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한철의 수명을 가지고 왔다. 그 수명은 겨울 외투의 낡고 바랜 소매 끝 같은 수명이다. '너의 첫눈은 바랜 소매끝자락에서 일어난 보푸라기 같은 거다.' 네가 보낸 사진 속 너의 헤진 겨울 외투의 소맷자락에서 첫눈의 징후를 보았다.' 풀벌레들의 시간은 치륵거리며 울다가 사그라든다. 마치 고딕성당의 오래된 석탑에서 흘러내리는 돌부스러기 같이 공기에 저촉됨이 없이 거슬림도 없이 날개도 아니며 울음도 아니며 흩날림도 아니며 ' 어느 빈 겨울 하늘에' 보푸라기 눈 같이. 존재들은 사라진다. 텅 빈 내가 '한가득 첫눈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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